국가의 통일정책 독점은 호소력 잃었다
[중앙일보]입력 2015.09.11 01:01 / 수정 2015.09.11 05:40
민족분단은 동서냉전으로 심화됐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근대의 내재적 모순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결과다. 근대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합리주의를 통해 결합해 보려 한 정치적 실험의 궤적이다. 그러나 결과는 방종한 자유주의와 폭압적 사회주의로 구체화돼 나타났다. 합리적 이성에 내재돼 있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이것과 저것을 엄격히 구분 짓는 이분법적 인식의 틀이 자기 충진적 과장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이성적 판단은 세상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구분할 것을 강요하면서 양자의 중간 영역을 둘 가운데 하나로 강제 편입하는 속성을 지녔다. 이로 인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각기 자기 속성의 정당화 과정에서 자기중심적 진화를 거듭하게 됐고, 그 결과 서로를 융합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척하는 원심력의 관계를 형성했다. 이 양극단의 모형이 자체 팽창으로 인해 마침내 38선을 경계로 마주 닿아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한반도 분단 현실의 내재적 속성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합리적 대안의 개발을 통해 분단의 갈등을 극복하고 민족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일은 무모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남한이 자기중심의 합리주의적 판단에 따라 대북 압박정책을 구사하거나 또는 유화정책을 모색한들 북한으로서는 자기중심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이에 조응하는 반작용 내지는 대응적 조치를 강구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국가중심의 대북 통일전략이 별반 효과를 보지 못한 원초적인 이유다. 근대의 합리주의 프레임만으로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을 스스로 풀 수가 없다.
근대의 합리주의 노선과 차원을 달리하는 통일 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해야 하는 이유다. 후기 근대론자들은 이를 감성의 세계에서 찾고자 한다. 이기주의에 기초한 합리주의의 모순은 이타주의에 기반한 감성적 접근을 통해 순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점에서 보면 초이성적 판단의 주체로 활동할 것이 기대되는 국가가 통일정책을 독점하는 것은 이제 호소력을 잃었다. 정보사회 도래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정부의 실패’가 새로운 대안 정부를 요구하고, 그에 따라 국가와 시민이 협력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거버넌스 체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이미 이 시대의 정설처럼 됐다.
그러나 통일 거버넌스 체제하에서도 국가의 이성적 판단과 시민사회의 감성적 접근을 여하히 융합할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후기 근대론자들은 이성과 감성이 작동하는 정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적인 세계나 육체의 세계같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통일 문제를 고도의 윤리적 과제로 접근하거나 아니면 진화심리학처럼 본능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남북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이로운가를 따지는 합리적 계산이나 논리를 초월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그것도 상대가 감동할 수 있게 진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탈북자와 고향에 남겨진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본능적 접촉이 그 어떤 대북정책보다도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근대의 또 다른 특징은 선형체계 내지는 일원주의에 있다.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관료제가 사회문제 해결의 최선책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던 이유다. 그러나 후기 근대로 들어서면서 ‘관료제의 종말’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보다 분산적인 의사결정의 중추를 필요로 한다. 중앙정부 중심으로 집권화하는 경우 즉응적으로 신속하게 북한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보 독점을 통해 관료가 통일 문제 논의 과정에서 지대추구에 빠질 위험성도 적지 않다. 정책 오류의 부담을 줄이거나 북한의 대남 의구심을 경감하고 보다 창의적인 대안 개발의 창구를 열기 위해서도 통일 문제 담당부서의 분권화는 최우선적 과제다.
지방정부의 통일 문제에 대한 독자성을 확장하거나 정부 부처 간 자율성을 보다 더 확대하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업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를 동북아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의 전제조건으로 삼자거나 지구촌 전체의 도덕적 책임의식을 제고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결국은 통일 문제 관여자들을 확대, 분산하자는 견해와 다름없다. 권투로 치면 인파이트보다 아웃복싱을 권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 독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 극복기가 한반도 통일의 주력 모델이 돼야 할 것 같다. 한민족의 재결합 문제를 현상유지 주변에서 맴도는 6자회담이 아니라 분극화 시대의 중진국들이 간여하는 지구촌 공동체의 윤리적 책임 문제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통일 문제 접근시각의 일대 전환이 요청된다. 근대가 아니라 후기 근대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박재창 한국외대 석좌교수·행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