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북사(北史) 고구려전

상 상 2015. 6. 5. 13:45

북사(北史) 열전 고구려전

 

고구려(高句麗)는 그 선조(先祖)가 부여(夫餘)에서 나왔다. [부여(夫餘)]()이 일찍이 하백(河伯)의 딸을 붙잡아 방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을 받게 되어 몸을 돌려 피했으나 햇빛이 다시 따라와 비추어 주었다. 얼마 후에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들이 만하였다. 부여왕(夫餘王)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가에 버려 두었으나 소와 말들이 피해 다녔다. 들판에 버려두었더니 뭇새들이 깃털로 그 알을 덮어 주었다.

은 그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게 되자, 결국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놓아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그가 성장하여 자()를 주몽(朱蒙)이라고 하니, 그 나라의 속언(俗言)

주몽(朱蒙)’이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부여(夫餘) 사람들이 주몽(朱蒙)은 사람이 소생이 아니라고 하여 그를 없애버리자고 청하였다. ()은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주몽(朱蒙)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朱蒙)

남몰래 말들을 시험하여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있음을 알고서, 준마는 먹이를 줄여 야위도록 하고 굼뜬 말은 잘 키워 살찌도록 하였다. 부여왕(夫餘王)이 살찐 말은 자기가 타고 야윈 말은 주몽(朱蒙)에게 주었다.

그 후 사냥터에서 사냥할 적에 주몽(朱蒙)에게는 활을 잘 쏜다고 하여 [한 마리를 잡는데] 화살 한 개씩을 주었다. 주몽(朱蒙)이 비록 화살은 한 개씩이었지만 잡은 짐승은 매우 많았다. 부여(夫餘)의 신하들이 또 주몽(朱蒙)을 죽이려고 모의를 꾸미자, 그의 어머니가 [그 음모를] 주몽(朱蒙)에게 알려 주었다.

 

주몽(朱蒙)은 이에 언위(焉違) 등 두 사람과 함께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중도에서 큰 강()을 만났는데, 건너려고 하여도 다리는 없고 부여(夫餘) 사람들의 추격은 매우 급박하였다. 주몽(朱蒙)이 물에 고()하기를,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지금 뒤쫓아 오는 병사들이 들이닥치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하자, 이에 고기와 자라들이 그를 위하여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朱蒙)[물을] 건너고 난 뒤 고기와 자라들은 곧바로 흩어져버려 뒤쫓아 오던 기병(騎兵)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朱蒙)은 마침내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다. 한사람은 삼베옷을, 한사람은 무명옷을, 한사람은 부들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주몽(朱蒙)과 함께 홀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마침내 정착하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주몽(朱蒙)이 부여(夫餘)에 있을 적에 그의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주몽(朱蒙)이 도망한 후에 아들을 낳으니, [()] 처음에는 여해(閭諧)라 하였다. 성장하여 주몽(朱蒙)이 국왕(國王)이 된 것을 알고는 곧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하여 오니, [주몽(朱蒙)] 그를 여달(閭達)이라 이름지어 주고, 국사(國事)를 그에게 맡겼다. 주몽(朱蒙)이 죽고 아들 여율(如栗)이 즉위하였다.

 

원문)

高句麗其先出夫餘王嘗得河伯女因閉於室內為日所照引身避之日影又逐既而有孕生一卵大如五升夫餘王棄之與犬犬不食與豕豕不食棄於路牛馬避之棄於野眾鳥以毛茹之王剖之不能破遂還其母母以物裹置暖處有一男破而出及長字之曰朱蒙其俗言朱蒙善射也夫餘人以朱蒙非人所生請除之王不聽命之養馬朱蒙私試知有善惡駿者減食令瘦駑者善養令肥夫餘王以肥者自乘以瘦者給朱蒙後狩于田以朱蒙善射給之一矢朱蒙雖一矢殪獸甚多夫餘之臣又謀殺之其母以告朱蒙朱蒙乃與焉違等二人東南走中道遇一大水欲濟無梁夫餘人追之甚急朱蒙告水曰:「我是日子河伯外孫今追兵垂及如何得濟?」於是魚鼈為之成橋朱蒙得度魚鼈乃解追騎不度朱蒙遂至普述水遇見三人一著麻衣一著衲衣一著水藻衣與朱蒙至紇升骨城遂居焉號曰高句麗因以高為氏其在夫餘妻懷孕朱蒙逃後生子始閭諧及長知朱蒙為國王即與母亡歸之名曰閭達委之國事朱蒙死子如栗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