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는 75점, 美·日은 80점… 韓·日은 잘 줘야 40점"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5.04.29 03:00
美 동북아 전문가 3인이 본 美·日 동맹과 韓·日 관계
미국과 일본이 '신(新)밀월 시대'를 맞고 있다. 아베 총리의 방미(訪美)를 계기로 미·일 관계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단계로 격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일 관계는 양국 간 과거사 문제 등에 가로막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 중·일 간의 화해 무드 조성 등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재정립과 새로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일의 신 밀월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지금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바라보고 또 풀어가면 좋을지.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아산 플레넘 2015' 행사 참석차 방한한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북핵 관련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수석연구원,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입안했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미 국무부 부장관 등 3명의 인터뷰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 봤다.
[스나이더 외교協 선임연구원]
"韓·日,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 낮아져 낮아진 천장에 韓·美·日 머리 찧는 중" 아베에 대한 기대 커질수록 그의 영향력만 높아질 것
대표적인 지한파인 한반도 전문가 스콧 스나이더〈사진〉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28일 본지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 관계에 대해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서, 양국 경제·안보 협력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고, 낮아진 천장에 한·미·일 삼국이 머리를 찧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일 관계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 이후 최악"이라며 "각국 여론 조사에 근거해 현재 국가 간 관계를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한·미 60~75점, 미·일 70~80점, 한·일은 후하게 쳐서 30~40점"이라고 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미·일 신(新)밀월은 필연이라고 했다. 미국이 안보를 지역 단위로 챙기고, 동맹국 역할을 강조하는 재균형 정책을 취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축)', 미·일 동맹은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에 비유했다"며 "좋은 외교관은 누가 더 우선이라 말하지 않지만, 안보를 지역 단위로 생각하기 시작한 미국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 중 가장 큰 자산은 일본"이라고 했다. 이어 "한·일의 불협화음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이 제약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견해"라며 "미국은 한·미·일 동맹뿐 아니라 일본·호주와도 '삼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단, 미국이 역내에서 수행해 온 핵심 군사 역할까지 일본 등 동맹국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일 관계 강화가 한·미·일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알면서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은 과거사 문제가 손익(損益)을 넘어 정체성 문제로 번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한·일 관계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만큼, (해결이 아닌) '관리'가 최선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양국은 공통 가치관, 오랜 교류사(史) 등 '타고난 동반자(natural partner)'라고 볼 만한 낙관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했다. 또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한국은 독재 등 과거 잘못을 바로잡으며 민주화를 이뤄냈다"며 "비슷한 논리로 50년 전 한국이 약소국일 때 체결한 한·일 협정도 재정립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에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백분 이해하지만, 아베 신조 현 총리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의 영향력만 커질 뿐"이라며 "오히려 한국인들이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과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베넷 랜드硏 수석연구원]
"日 육군은 15만명, 한국의 3분의 1… 주변국의 우려는 신뢰 부족의 방증" 美·日 새 가이드라인으로 北核 위협 줄어들 수도
"동아시아에선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 때처럼 군국주의 길을 걷게 될까 걱정하는 거지요.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군요. 일본 육군이 몇 명인가요? 15만명입니다. 한국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미 국방부 산하 안보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군사 전문가 브루스 베넷〈사진〉 수석연구원은 27일 체결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동아시아 지역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일본이 얻게 되는 집단적 자위권은 '방어'가 목적일 뿐, 침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일본 군사력이 과거처럼 무분별하게 성장하는 것을 상상하기도 힘들다. 일본 경제가 앞으로도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군(軍)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수 없다. 반면 경제가 살아난다 해도 2차대전 때처럼 젊은이들을 무더기로 징집하기는 어렵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젊은 인력을 산업 부문에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행보를 걱정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일본이 주변국들과 '신뢰 형성'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넷 수석연구원은 미·일이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이유 중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 북핵 문제를 꼽았다. 최근 중국은 북한이 핵탄두를 20개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과거 발표한 추정치(10개 내외)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베넷 박사는 "핵탄두의 개수도 그렇고, 북한이 핵을 사용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북핵 위험이 현실화될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이드라인 개정은 커져가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다소라도 줄일 수 있다는 게 베넷 수석연구원의 설명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일본은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미사일 발사를 감지한 뒤,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로 요격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폭주(暴走)할 여지가 줄어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
"남한엔 미군 2만8000명이 주둔 중이고, 유사시엔 그 몇 배나 되는 병력과 장비가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투입될 겁니다. 과거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을 의식해 그런 위험 부담을 지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 그것을 감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반면 한국엔 미군 지원 병력을 수용할 비행장과 항구가 부족하지요. 미·일 가이드라인 발효를 앞두고 한국 정부는 향후 충분한 병력 수용 공간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인버그 前국무 부장관]
"韓·日 간 역사 관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사 誤用 해선 안돼" 日은 美의 敵 아닌 동맹… 과거사 문제로 압박 못해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입안한 제임스 스타인버그<사진>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8일 한·일 관계와 관련, "역사 문제는 중요하고 미국도 이를 중시하지만, 동시에 역사를 오용(誤用)하는 것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우려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양국이 상대방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해해 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지난 2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셔먼 차관은 지난 2월 27일 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얻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런 도발은 발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했다. 적시하진 않았지만 한국 또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 학장을 맡고 있는 스타인버그 전 부장관은 '미국이 과거사 문제로 일본에 충분한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압박은 적에 대해서 가하는 것이지 동맹에 대해선 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설령 압박을 가한다 해도 생산적·효과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역할은 한·일 사이의 이견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더 소통하고 서로가 양국의 우려를 이해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아베 총리가 8월에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아베 담화'에서 '침략'과 '사죄'라는 말을 언급해야 한다는 지적과 관련, "다른 국가들의 우려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을 찾는 게 핵심이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며 "'구체적인 용어를 무엇을 쓰느냐'는 훨씬 덜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사용한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란 표현에 대해서도 "영어로 'trafficking'이라고 번역되는 일본어의 뉘앙스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뉘앙스 파악에는 덜 집중하고, 미래로 진전할 수 있는 화해의 여지가 있는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인신매매의 주어를 의도적으로 생략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일본군의 책임을 부정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또 "지난 70년 동안,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일본이 아태 지역 등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은 이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도 했다.
양모듬 기자, 오윤희 기자, 이용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