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작은 나라의 큰 外交

상 상 2015. 3. 30. 16:49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5.03.30 03:00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세상을 뜬 다음 날인 24일 마잉주 대만 총통이 탄 타이베이발 중화항공 전세기가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마 총통은 총리 관저로 가서 고인의 장남인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유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7시간여 머문 뒤 당일 돌아간 짧은 여정에 깃든 의미는 컸다. 1990년 싱가포르가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斷交)한 뒤 대만 국가원수의 첫 방문이었다. 오랜 벗인 리셴룽 총리의 개인적 초청에 따른 비공식 방문이었지만 중국에 밀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대만 정부 관계자들은 뿌듯해했다.

 

중국 외교부는 "싱가포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라"는 말로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그뿐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존경받는 정치가이자 인민의 오랜 친구"라고 리콴유를 깍듯이 추모했고,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장례 조문단을 이끌었던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을 29일 장례식에 파견하며 끝까지 예우했다. 시간 차를 두고 양안(兩岸) 최고 지도부가 리콴유를 극진히 조문하게 된 장면은 '()을 두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중립과 균형을 원칙으로 삼은 싱가포르 실용주의 외교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싱가포르의 대()양안 관계는 절묘했다. 리콴유는 건국 후 '반공(反共)'의 한배를 탄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면서도 강대국 중국과의 협력에도 힘을 쏟았다. 마오쩌둥·덩샤오핑 등 중국 지도자와 독대할 정도로 관계가 돈독했다. 1990년 중국과 정식 수교 뒤에도 대만을 홀대하지 않고 동맹으로 우대했다. 대만과 군사 협정을 맺고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대만에 훈련기지를 운영해 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이난(海南)에 부지를 마련해줄 테니 옮기라'는 중국의 제안도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작년 11월엔 인민해방군 훈련에 병력 70명을 파견하며 중국과 군사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번 조문 외교에서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대만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양안을 동시에 품은 '줄타기 외교'의 진수다.

 

싱가포르의 실용 외교는 한반도에서도 빛을 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장례식에 참석할 정도로 '한국의 우방'으로 알려진 싱가포르다. 그런데 '우방의 주적(主敵)'이라고 북한을 홀대했다면 "우리 인민의 친근한 벗 리콴유 각하가 애석하게 서거했다"는 북한의 정성 어린 조전(弔電)이 나왔을까.

 

이 작은 나라의 큰 외교 역량 앞에서 '사드' 'AIIB' 같은 이슈에 휘둘려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한국 외교는 더욱 초라해 보인다. 현 정부의 역량만 탓할 일은 아니다. 열강의 이익이 충돌하고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싱가포르식 줄타기 외교를 펼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동서 냉전미국 초강대국화중국 급부상 등으로 요동쳐 온 세계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예단할 수 없다. 각국은 더욱 치열하게 국익을 따지며 주판알을 튕길 것이고, '오랜 벗' '숙적(宿敵)'의 의미는 빛이 바랠 것이다. 우리도 싱가포르의 균형·실리 외교를 분석하고 장점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정지섭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