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삼성전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상 상 2015. 3. 18. 17:16

[중앙일보]입력 2015.03.18 00:03 / 수정 2015.03.18 00:10

 

삼성전자가 올해 임금 동결을 발표했을 때 시중 반응은 시쳇말로 이건 뭥미?’였다. 지난해 매출 206조원, 영업이익 25조원의 회사가 위기로 허리띠를 졸라맨다니 말이다. 하나 삼성전자 내부의 위기감은 과장이 아니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10%, 영업이익은 32% 넘게 줄어서다. 성장 외길을 달려온 진격의 삼성전자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한데 삼성전자 현상은 그대로 수출한국호에도 적용된다. 지난해 무역규모는 4년 연속 1조 달러대, 무역수지는 474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앞날은 걱정이다.

 

 중국의 추격 정도라면 기술 등으로 어찌해 볼 텐데, 문제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새로운 조짐이다. 1970년대부터 우린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당시 웬만한 나라는 수출이 성장동력이었다. 한데 돌아보니, 이젠 수출을 말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 요즘 세계 경제당국의 관심사는 내수.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경제학자와 각종 국제기관들도 내수주도형 성장전략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가까운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은 수년 전부터 내수 소비 중심 성장전략을 표방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고가영 연구위원이 유엔 208개국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70~2007년 사이 수출중심국 성장률은 내수중심국보다 높았지만, 2008~2012년 수출중심국 평균성장률은 2.6%, 내수중심국은 3.4%로 역전됐다. 지금은 각국마다 경쟁하듯 돈을 풀고, 다시 공장을 불러들이고, 미국·일본 기업들은 임금 올리기에 나섰다. 새 경제전략의 성공 여부는 아직 모르지만 세계는 이렇게 내수 전략으로 시나브로 바뀌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가보지 않은 길로 제시한 소득주도형 경제는 이렇게 다른 나라에선 이미 가고 있는 길이다. 최 부총리의 임금인상론은 이런 트렌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열린 경제 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최 부총리는 기업에 임금인상을 부탁했고, 경제단체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한데 뒷얘기를 들어보니 비공개로 열린 토론회에선 경제단체장들이 주로 불가함을 설득했고, 최 부총리는 수세적이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반대 논리는 언제나 같다. “임금인상으로 수출단가 경쟁에서 밀리면 고용도 줄고, 소비도 위축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같은 첨단 기업도 실적 저조에 허리띠부터 졸라매는 수출역군식 발상밖에 못하는 게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다.

 

 기업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인구 5000만 명으론 일단 시장 규모가 안 된다. 인구가 많은 일본·중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수출 대기업 규모로 보면, 국내 소비시장이 아무리 활황이어도 언 발에 오줌 누는정도밖에 안 되는 게 사실이다. 또 내수는 디테일한 서비스가 관건인데 컨테이너 판매를 하던 우리 기업들의 체질엔 썩 잘 맞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임금인상’ ‘소득주도 경제를 적극 지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보고서에서 소득격차가 경제성장을 훼손한다고 경고했듯이 이젠 소득격차 줄이기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 또 각국마다 내수 전략으로 신토불이가 확산되면 수출 시장은 줄 것이고,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새 패러다임에 적응하고 발상을 바꿔야 하기에 그렇다.

 

 한데 최 부총리가 거두절미하고 임금인상같은 민감한 사안을 툭 던지곤 기업 설득도 못하고, 논의 자체가 겉도는 걸 보면서 과연 정부가 가는 길을 알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든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는 마당에 지지하는 나도 길잡이 정부가 미덥잖은데 기업은 뭘 믿고 모험을 하겠는가. ‘소득이 늘면 소비가 활성화되고라는 교과서 같은 얘기가 아니라 우리 시장 현실에서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인지 로드맵부터 제시해야 한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