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42, 구당서 돌궐전-5)

상 상 2015. 1. 30. 17:56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42, 구당서 돌궐전-5)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구당서 돌궐전 출처:

1) 번역문: 동북아 역사넷/ 도서/ 중국정사 외국전/ 舊唐書 卷194돌궐열전(突厥列) 144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舊唐書/ 列傳/ 卷一百九十四 上

번 역 문

원 문

8. 묵철이라는 자는골돌록의 아우이다. 골돌록이 죽었을때그 아들이 아직 어려서묵철이 마침내 그 지위를 찬탈하여스스로 가한에 즉위하였다. 장수2(693)무리를 통솔하고 영주에 침구하여백성과 관리를 죽이고 약탈하니, ()측천이 백마사의 중 설회의를 대북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18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토벌하도록 보냈으나적을 만나지 못하자얼마 안되어 군대를 돌려 돌아왔다. 묵철이 잠시 후 사신을 보내 내조하니()측천이 크게 기뻐하며좌위대장군을 제수하고귀국공으로 책봉하며재물 5천단을 하사하였다. 다음해다시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또 천선가한을 덧붙여 제수하였다.

默啜者骨咄祿之弟也骨咄祿死時其子尚幼默啜遂篡其位自立為可汗長壽二年率眾寇靈州殺掠人吏則天遣白馬寺僧薛懷義為代北道行軍大總管領十八將軍以討之既不遇賊尋班師焉默啜俄遣使來朝則天大悅冊授左衞大將軍封歸國公賜物五千段明年復遣使請和又加授遷善可汗

만세통천 원년(696)거란 수령 이진충손만영이 (당을)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켜(주 도둑)부를 공격하여 함락시키자묵철이 사신을 보내 말씀을 올렸다:「청컨대 하서의 항복한 주민들을 돌려주신다면즉시 부락의 병사와 말을 통솔해 국가(당나라)를 위하여 거란을 쳐서 토벌하겠습니다.제서로 허락하였다. 묵철이 드디어 거란을 공격하여 토벌하자() 부족의 무리가 크게 무너져그 가구(家口)가 다 잡혔으며묵철은 이로부터 병력과 무리가 점차 강성하여 졌다. ()측천은 바로 사신을 보내 묵철을 특진힐질리시 대선우입공보국 가한으로 책봉하였다. 성력원년(698)묵철이 표를 올려 ()측천에게 아들이 되겠다고 청하고아울러 딸이 있다고 말하며화친을 청하였다. 애초에함형 연간(670~673)돌궐 여러 부락의 투항해 귀부한 자들이대부분 풍대 등 6주 여러 곳에 살았는데(이들을) 항호(降戶)라고 말하였다. 묵철이 이때가 되자 또 이 항호와 선우 도호부의 땅을 원하면서아울러 농기구와 종자를 청하니()측천이 처음에는 불허하였다. 묵철이 크게 원망하고 노여워하여언사가 심히 거만하며우리 사신 사빈경 전귀도를 구속하고장차 해치려고 하였다. 당시 조정은 그 군사의 위세를 두려워하여납언 요숙과 난대시랑 양재사가 건의하여 그 화친을 허락할 것을 청하니마침내 6주의 항호 수천 장()을 다 몰고 갔으며아울러 종자(種子) 4만여석과 농기구 3천사를 함께 주니묵철이 이 이유로 점차로 강성하게 되었다.

萬歲通天元年契丹首領李盡忠孫萬榮反叛攻陷營府默啜遣使上言:「請還河西降戶即率部落兵馬為國家討擊契丹。」制許之默啜遂攻討契丹部眾大潰盡獲其家口默啜自此兵眾漸盛則天尋遣使冊立默啜為特進頡跌利施大單于立功報國可汗聖曆元年默啜表請與則天為子并言有女請和親咸亨中突厥諸部落來降附者多處之豐代等六州謂之降戶默啜至是又索此降戶及單于都護府之地兼請農器種子則天初不許默啜大怨怒言辭甚慢拘我使人司賓卿田歸道將害之時朝廷懼其兵勢納言姚璹鸞臺侍郎楊再思建議請許其和親遂盡驅六州降戶數千帳并種子四萬餘碩農器三千事以與之默啜浸強由此也

그해(698)()측천이 위왕 무승사의 아들 회양왕 ()연수에게 명하여 그 딸을 받아들여 왕비로 삼도록 하고우표도위대장군 염지미를 임시 춘관상서로우무위위랑장 양제장을 임시 사빈경으로 (삼아 함께) 보내며금과 비단을 많이 주어오랑캐의 궁정에 송부하였다. ()행이 흑사의 남쪽 궁정에 도착하자묵철이 ()지미 등에게 일러 말했다.:「내 딸을 이씨 가문인 천자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는 줄 알았는데너희가 지금 무씨 가문의 아들을 데리고 오니이 아이는 천자의 아들인가 아닌가우리 돌궐은 누대 이래로이씨 가문에 항복하여 귀부하였는데지금 들으니 이씨 가문 천자의 종자가 끝이나 전부 없어지고오직 두 아이만 남아있다고 하니내가 지금 병사들을 거느리고 (두 아이를 황제로) 옹립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마침내 ()연수 등을 체포하여별도의 장소에 구속하고가짜로 ()지미를 가한으로 삼아함께 무리 십여만을 통솔하여우리의 정난군과 평적군청이군 등의 군대를 습격하니정난군사 좌옥검위장군 모용현즉이 병사 오천명을 들어 항복하였다. 잠시 후 규()() 등의 주()로 진격하여 침구하니()측천이 사속경 무중규를 천병 중도대총관으로 삼고우무위위장군 사타충의를 천병 서도전군총관으로 삼고유주도독 장인단을 천병 동도총관으로 삼아병사 30만을 통솔하여 치도록 명하였다. 우우림위대장군 염경용을 천병 서도후군총관으로 삼아병사 15만을 거느리고 후원하도록 하였다. 묵철이 또 긍악도로부터 나와울주를 침구하고비호현을 함락하였다. 잠시 후 정주(定州)로 진격하여 공격해서자사 손언고를 죽이며백성들의 오두막과 집을 불 태우고남녀를 노략질하여 사로잡아나이가 어리고 많고 없이 모두 죽였다. ()측천이 대노하여묵철을 목베는 자는 왕에 봉한다는 상을 내걸었으며묵철의 칭호를 고쳐 참철로 하였다. 얼마 안되어 또 조주를 포위하여 핍박하니장사 당파약이 도리어 성(을 가지고) 호응하려고 하였는데자사 고예가 항거해 절개(를 지켜) 따르지 않았으나마침내 살해 당하였다. ()측천 이에 여릉왕을 황태자로 세우고하북도행군대원수를 맏도록 명령하였으나군대가 아직 출발하기도 전에 묵철이 조()() 등의 주()에 있는 남녀 8~9만명을 모두 강탈하여오회도를 따라 가면서통과하는 곳마다 잔인하게 학살하니(그 숫자를) 모두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타충의와 후군총관 이다조 등이 모두 중요한 병사를 가졌으나적과 서로 바라볼뿐감히 싸우려 하지 않았다. 하북도원수 납언 적인걸만이 병사 10만을 거느리고 추격하였으나미치지 못하였다.

其年則天令魏王武承嗣男淮陽王延秀就納其女為妃遣右豹韜衞大將軍閻知微攝春官尚書右武威衞郎將楊齊莊攝司賓卿大齎金帛送赴虜庭行至黑沙南庭默啜謂知微等曰:「我女擬嫁與李家天子兒你今將武家兒來此是天子兒否我突厥積代已來降附李家今聞李家天子種末總盡唯有兩兒在我今將兵助立。」遂收延秀等拘之別所偽號知微為可汗與之率眾十餘萬襲我靜難及平狄清夷等軍靜難軍使左玉鈐衞將軍慕容玄崱以兵五千人降之俄進寇媯檀等州則天令司屬卿武重規為天兵中道大總管右武威衞將軍沙吒忠義為天兵西道前軍總管幽州都督張仁亶為天兵東道總管率兵三十萬擊之右羽林衞大將軍閻敬容為天兵西道後軍總管統兵十五萬以為後援默啜又出自恆岳道寇蔚州陷飛狐縣俄進攻定州殺刺史孫彥高焚燒百姓廬舍虜掠男女無少長皆殺之則天大怒購斬默啜者封王改默啜號為斬啜尋又圍逼趙州長史唐波若翻城應之刺史高叡抗節不從遂遇害則天乃立廬陵王為皇太子令充河北道行軍大元帥軍未發而默啜盡抄掠趙定等州男女八九萬人從五回道而去所過殘殺不可勝紀沙吒忠義及後軍總管李多祚等皆持重兵與賊相望不敢戰河北道元帥納言狄仁傑總兵十萬追之無所及

(성력)2(699)묵철은 그 아우 돌실복을 좌상찰로 세우고골돌록의 아들 묵구를 우상찰로 세웠는데각기 병마 2만여명을 관장하게 하였다. 또 그 아들 복구를 작은 가한으로 세웠는데그 지위는 양찰의 위에 있었으며처목곤 등 10()의 병마 4만여명을 관장하게 하고또 호칭을 척서가한이라고 하였고이로부터 해마다 변경을 침구하였다. 구시원년(700)농우에 있는 제감의 말 만여필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제서로 우숙정어사대부 위원충을 영무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대비하였고또 안북대도호 상왕 ()단을 천병도원수로 삼아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토벌하라고 명하였으나마침내 실행하기도 전에 적이 물러났다.

二年默啜立其弟咄悉匐為左廂察骨咄祿子默矩為右廂察各主兵馬二萬餘人又立其子匐俱為小可汗位在兩察之上仍主處木昆等十姓兵馬四萬餘人又號為拓西可汗自是連歲寇邊久視元年掠隴右諸監馬萬餘匹而去制右肅政御史大夫魏元忠為靈武道行軍大總管以備之又命安北大都護相王旦為天兵道元帥統諸軍討擊竟未行而賊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