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본기- 4 71 년 (AD 123) : 목도루 등을, 수성과 함께 정사에 참여하게 [번역문] 71년(서기 123년) 겨울 10월에 패자 목도루(穆度婁)를 좌보로 삼고, 고복장(高福章)을 우보로 삼아, 수성과 함께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72 년 (AD 124) : 가을 9월 그믐 경신에 일식이 있었다. [번역문] 72년(124) 가을 9월.. 고구려 본기 2011.11.27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본기- 3 55 년 (AD 107) : 질산에서 사냥하여 자주색 노루를 잡았다. [번역문] 55년(107) 가을 9월에 왕은 질산(質山) 남쪽에서 사냥하여 자주색 노루를 잡았다. 겨울 10월에 동해곡(東海谷)의 관리가 붉은 표범을 바쳤는데 꼬리의 길이가 아홉 자나 되었다. 56 년 (AD 108) : 백성들이 굶주리자 사신.. 고구려 본기 2011.11.26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본기- 2 4 년 (AD 56) : 가을 7월에 동옥저(東沃沮)를 정벌하고 [번역문] 4년(서기 56) 가을 7월에 동옥저(東沃沮)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 영토를 개척하여 동쪽으로 창해(滄海)까지 이르렀고 남쪽으로 살수까지 이르렀다. 7 년 (AD 59) : 고안연에서 흰 물고기를 낚아 잡았다... 고구려 본기 2011.11.25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1 0 년(AD 53) : 태조대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태조대왕(太祖大王)<혹은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하였다.>의 이름은 궁(宮)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어수(於漱)이며, 유리왕의 아들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이다. 어머니 태후(太后)는 부여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었.. 고구려 본기 2011.11.24
고구려 제5대 모본왕 본기 0 년 (AD 48) : 모본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모본왕(慕本王)은 이름이 해우<또는 해애루(解愛婁)라고도 하였다>이고 대무신왕의 맏아들이다. 민중왕이 죽자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사람 됨됨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며 국사에 힘쓰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1 년 (AD 48.. 고구려 본기 2011.11.23
삼국사기 고구려 제4대 민중왕 본기 0 년 (AD 44) :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민중왕(閔中王)은 이름이 해색주(解色朱)이고 대무신왕의 아우이다. 대무신왕이 죽었으나 태자가 어려서 정사를 맡아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 겨울 11월에 크게 사면하였다. 2 년 (AD 45) .. 고구려 본기 2011.11.22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5 12월에 왕자 해우(解憂)를 태자로 삼았다. 사신을 한(漢)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광무제(光武帝)가 고구려의 왕호를 회복시켰다. 이 때가 건무(建武) 8년이었다. 20 년 (AD 37) : 왕은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였다. [번역문]20년(서기 37) 왕은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였다. 24 년 (AD 41) : 봄 3.. 고구려 본기 2011.11.21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4 13 년 (AD 30) : 매구곡사람 상수와 동생 위수가 항복해 왔다. [번역문] 13년(서기 30) 가을 7월에 매구곡(買溝谷) 사람 상수(尙須)가 그 동생 위수(尉須) 및 사촌 동생 우도(于刀)와 함께 항복해 왔다. 14 년 (AD 31) : 11월에 천둥이 쳤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번역문] 14년(서기 31) 겨울 11.. 고구려 본기 2011.11.20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3 8 년 (AD 25) : 을두지를 우보로 삼고 국정을 맡겼다. [번역문]8년(서기 25) 봄 2월에 을두지(乙豆智)를 우보(右輔)로 삼고 군무와 국정을 맡겼다. 9 년 (AD 26) : 10월에 개마국을 정벌하여 [번역문]9년(서기 26) 겨울 10월에 왕은 친히 개마국(蓋馬國)을 정벌하여 그 왕을 죽였으나, 백성을 위.. 고구려 본기 2011.11.19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 2 4 년 (AD 21) : 12월에 왕은 군대를 내어 부여를 정벌하였다. [번역문] 4년(서기 21) 겨울 12월에 왕은 군대를 내어 부여를 정벌하였다. 비류수가에 다다랐을 때 물가를 바라보니 마치 여인이 솥을 들고 노는 것 같아, 다가가서 보니 솥만 있었다. 그것으로 밥을 짓게 하자, 불을 피우지 .. 고구려 본기 201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