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입력 : 2017.02.26 18:15:06 수정 : 2017.02.27 10:00:35
포용적 정치·경제 순환구조 끊겨…중산층 붕괴 노조·의료·법조 집단이기주의가 공정경쟁 막아
◆ 국가실패 기로에 선 한국 ① / 5大 한국병 왜 위험한가 ◆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이에 맞서는 탄핵 반대 시위대가 격돌하는 양상을 또다시 연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극도의 정치적 혼란과 대결, 그리고 반목이 확산되고 있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여기에다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둔화되는 가운데 양극화와 빈부 격차 심화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또 시작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수습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 엘리트 계층이 '당리당략'적 목적에 따라 갈등을 부추기거나 방치하면서 고질적인 '한국병'이 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번영의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려면 포용적 경제제도와 포용적 정치제도가 모두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 있지 않고 서로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국가가 번영을 하기 위해선 서로 다른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포용적인 정치체제를 통해 국가 운영에 반영되고, 또 이 같은 다양성이 공정한 경쟁의 장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면 결국 극렬한 사회갈등과 함께 국가 실패의 길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이 '성공한 국가'에서 '실패한 국가'로 추락하는 결정적 분기점에 처하게 된 것도 이런 선순환 구조의 고리가 깨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 의료계, 법조계, 교육계 등 각종 이익단체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만 치중하면서 경쟁을 제한하는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하는 것도 또 다른 '한국병'의 징후다. 특정 계층이 다른 사람의 시장 참여를 막으려고 진입장벽을 촘촘히 구축하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이익단체를 구성해 정부와 국회에 공공연히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경쟁을 제한해 기회의 평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병'의 증상이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분야가 의료계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2009년 이후 8년째 연간 3058명으로 유지하도록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넣고 이를 통해 고수익을 보장받고 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원격의료만 해도 기존 병원들이 반대해 자꾸 개혁이 미뤄진다"면서 "나쁜 법은 없애고 좋은 법은 도입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풍조 속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한 보상이라는 경쟁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사라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6월 실시한 '사회체제에 대한 평가' 설문에 따르면 '능력에 따른 보상'에는 응답자가 10점 만점에 평균 2.8점만을 부여했다. 또한 '공정한 경쟁 가능' 문항에도 응답자는 3.5점만을 부여했다.
공정한 경쟁이 막히면서 부정부패가 늘고 있다. 특히 공직자가 검은돈을 민간에서 받고 이득을 챙기는 뇌물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대검찰청 검찰연감에 따르면 2015년 뇌물죄로 검찰에 접수된 사람은 2256명이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12년 뇌물죄에 연루된 인원이 1755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28.5% 급증한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뇌물죄와 같은 공직자의 범죄에 여전히 관대하다는 것이다. 2012년만 해도 뇌물죄로 접수된 인원 가운데 761명을 검찰이 재판에 넘기면서 뇌물 사건 기소율은 43.3%였다. 그러던 것이 2015년 뇌물죄 기소율이 급격히 하락해 29.6%까지 떨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담합으로 시장을 교란하다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는 2012년만 해도 연간 76건에 그쳤으나 2015년 235건으로 늘었다. 이는 이미 시장에 진입한 사업자들이 공모해 다른 참여자를 배제하기 때문에 일종의 지대추구 행위로 분류된다.
이처럼 공직과 민간 기업 모두 부당하게 공모하는 행위가 만연하면서 기회의 불평등이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 기득권에 진입한 계층이 새로운 시장 참여를 배제하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 가구(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7000원으로 전년 대비 5.6% 감소했다. 1분위 가구 소득은 2003년 통계 작성 이래로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수치다. 반면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34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2.1%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산층은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 한국의 중산층은 74%였지만 2010년 67%까지 감소했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부 교수(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기득권을 누리려는 행위가 만연해 있어 지대추구를 심하게 하는 나라로 포용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 <용어 설명>
▷ 비포용적(extractive) 제도 : 지배층과 엘리트 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를 세습하고, 국민의 정치 참여를 막는 폐쇄적 경제·정치 제도를 가리킨다. 원문에서는 '착취적 제도'로 썼지만, 반대 개념인 포용적 제도와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비포용적 제도'로 의역했다.
[기획취재팀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 부장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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