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규명(糾明)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 위서 고구려전, 북사 고구려전 등을 한꺼번에 분석하기는 내용이 많아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삼국사기 동명성왕의 내용을 기준으로 나누어서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8개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 1「 해부루와 금와 이야기, 부여의 동천」 내용 2「금와왕과 유화의 만남」 내용 3「주몽의 탄생과 어린시절」 내용 4「대소의 투기와 주몽의 부여탈출 원인」 내용 5「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 내용 6「송양과의 만남과 겨룸 그리고 송양의 항복」 내용 7「성곽과 궁실지음, 주몽 사망」 내용 8「유리왕의 어린시절 일화 및 태자책봉」 따라서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기준으로 8개로 나누어 차례대로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 위서 고구려전, 북사 고구려전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동명성왕 본기를 어떻게 썼는지, 그에따라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이 무엇인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규명(糾明)- 1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내용 1: 해부루와 금와 이야기, 부여의 동천(東遷) 종 류 | 내 용 |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 | 부여(扶餘)의 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드려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하였는데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서로 마주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서 그 돌을 옮기니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蛙] <개구리는 또는 달팽이[蝸]라고도 한다.> 모양이었다. 왕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자식을 준 것이다.” 하고는 거두어 길렀는데,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후에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말하였다. “일전에 하느님이 내게 내려와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희는 피하거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라니 도읍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아란불이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 이름을 동부여(東扶餘)라고 하였다. 옛 도읍지에는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와서 도읍하였다. 扶餘王解夫婁老無子 祭山川求嗣 其所御馬至鯤淵 見大石 相對流淚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 金色蛙形 蛙一作蝸 王喜曰 “此乃天賚我令胤乎” 乃收而養之 名曰金蛙 及其長 立爲太子 後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腴宜五穀 可都也’” 阿蘭弗遂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其舊都有人 不知所從來 自稱天帝子解慕漱 來都焉 | 구삼국사(舊三國史) | 부여왕(夫餘王) 해부루(解負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山川)에 제사하여 아들 낳기를 빌러 가는데,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어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니 금빛 나는 개구리 형상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 왕이, “이것은 하늘이 내게 아들을 준 것이다.”하며, 길러서 금와(金蛙)라 하고 태자(太子)로 삼았다. 정승 아란불(阿蘭弗)이,“일전에 천제(天帝)가 내게 내려와서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피하라.’ 하였는데, 동해(東海) 가에 가섭원(迦葉原)이란 땅이 있어 오곡(五穀)이 잘 되니 도읍할 만합니다.”하고, 아란불은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고 동부여(東夫餘)라 이름하였다. 예전 도읍터에는 해모수(解慕漱)가 천제의 아들이 되어 와서 도읍하였다. 夫余王解夫婁老無子。祭山川求嗣。所御馬至鯤淵。見大石流淚。王怪之。使人轉其石。有小兒金色蛙形。王曰。此天錫我令胤乎。乃收養之。名曰金蛙。立爲太子。其相阿蘭弗曰。日者天降我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汝其避之。東海之濱有地。號迦葉原。土宜五穀。可都也。阿蘭弗勸王移都。號東夫余。於舊都。解慕漱爲天帝子來都。 | 단군고기(檀君古記) | 부루가 아들이 없어서 금색 와형아(金色蛙形兒)를 얻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세워서 태자(太子)를 삼았다. 그 정승 아란불(阿蘭弗)이 아뢰기를, “일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다 나라를 세우도록 할 것이니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東海) 가에 땅이 있는데, 이름은 가섭원(迦葉原)이며, 토질이 오곡(五穀)에 적당하여 도읍할 만하다. ’고 하였습니다.” 하고, 이에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였다. 夫婁無子, 得金色蛙形兒養之, 名曰金蛙, 立爲太子。 其相阿蘭弗曰: “日者, 天降于我曰: ‘將使吾子孫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迦葉原, 土宜五穀, 可都也。'” 於是勸王移都。 | 위서 고구려전 |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음. | 북사 고구려전 |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음. |
※ 내용 1「 해부루와 금와 이야기, 부여의 동천(東遷)」의 비교, 분석 삼국사기(三國史記) 동명성왕 본기와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를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 부여(扶餘)의 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드려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하였는데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서로 마주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서 그 돌을 옮기니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蛙] <개구리는 또는 달팽이[蝸]라고도 한다.> 모양이었다. 왕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자식을 준 것이다.” 하고는 거두어 길렀는데,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후에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말하였다. “일전에 하느님이 내게 내려와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희는 피하거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라니 도읍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이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 이름을 동부여(東扶餘)라고 하였다. 옛 도읍지에는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와서 도읍하였다. 扶餘王解夫婁老無子 祭山川求嗣 其所御馬至鯤淵 見大石 相對流淚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 金色蛙形 蛙一作蝸 王喜曰 “此乃天賚我令胤乎” 乃收而養之 名曰金蛙 及其長 立爲太子 後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腴宜五穀 可都也’” 阿蘭弗遂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其舊都有人 不知所從來 自稱天帝子解慕漱 來都焉 | 부여왕(夫餘王) 해부루(解負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山川)에 제사하여 아들 낳기를 빌러 가는데,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어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니 금빛 나는 개구리 형상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 왕이, “이것은 하늘이 내게 아들을 준 것이다.”하며, 길러서 금와(金蛙)라 하고 태자(太子)로 삼았다. 정승 아란불(阿蘭弗)이, “일전에 천제(天帝)가 내게 내려와서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피하라.’ 하였는데, 동해(東海) 가에 가섭원(迦葉原)이란 땅이 있어 오곡(五穀)이 잘 되니 도읍할 만합니다.” 하고, 아란불은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고 동부여(東夫餘)라 이름하였다. 예전 도읍터에는 해모수(解慕漱)가 천제의 아들이 되어 와서 도읍하였다. 夫余王解夫婁老無子。祭山川求嗣。所御馬至鯤淵。見大石流淚。王怪之。使人轉其石。有小兒金色蛙形。王曰。此天錫我令胤乎。乃收養之。名曰金蛙。立爲太子。其相阿蘭弗曰。日者天降我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汝其避之。東海之濱有地。號迦葉原。土宜五穀。可都也。阿蘭弗勸王移都。號東夫余。於舊都。解慕漱爲天帝子來都。 |
1) 삼국사기와 구삼국사는 내용이 똑같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이 똑같다는 것은 특히 원문을 비교해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는 구삼국사에 몇몇개의 글자를 첨가하였뿐이다. 이는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는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를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구삼국사(舊三國史)가 삼국사기의 원본, 즉 원전(原典)임이 명백하다. 즉,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구삼국사(舊三國史)를 그대로 인용하였는데 몇 명개의 글자를 첨가하여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한 것이다. 2) 단군고기는 삼국사기와 내용은 사실상 같으나 서술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이 부분에 있어서 삼국사기는 단군고기를 인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 중국측 사료인 위서 고구려전과 북사 고구려전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