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광개토왕비문(남한 번역문과 북한 번역문)

상 상 2012. 1. 8. 19:31

(광개토왕비문: 남한의 대표적인 번역문과 북한의 번역문을 올립니다. 남한 것은 기본적으로 일본인들의 입장과 같습니다)

 

광개토왕비문(남한 번역문)

 

옛적 시조(始祖)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는데 (王은) 북부여(北夫餘)에서 태어났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河伯 : 水神)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성(聖)스러운 … 이 있었다(5字 不明).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거쳐가게 되었다.

왕이 나룻가에서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하백(河伯)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鄒牟王)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 무리를 짓게 하여라”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곧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떼가 물위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물을 건너가서,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산상(山上)에 성(城)을 쌓고 도읍(都邑)을 세웠다.

왕이 왕위에 싫증을 내니, (하늘님이) 황룡(黃龍)을 보내어 내려와서 왕을 맞이하였다.

(이에) 왕은 홀본(忽本)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를 디디고 서서 하늘로 올라갔다.

 

유명(遺命)을 이어받은 세자(世子) 유류왕(儒留王)은 도(道)로서 나라를 잘 다스렸고,

대주류왕(大朱留王)은 왕업(王業)을 계승하여 발전시키었다.

17세손(世孫)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다.

 

(王의) 은택(恩澤)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무(威武)는 사해(四海)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각기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甲寅年) 9월 29일 을유(乙酉)에 산릉(山陵)으로 모시었다. 이에 비를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그 말씀[詞]은 아래와 같다.

 

패려(稗麗)가 고구려인에 대한 (노략질을 그치지 않으므로), 영락(永樂) 5년 을미(乙未)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그 3개 부락(部洛) 600~700영(營)을 격파하니,

노획한 소·말·양의 수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이에 王이 행차를 돌려 양평도(襄平道)를 지나 동으로 ▨성(▨城), 역성(力城), 북풍(北豊), 오비▨(五備▨)로 오면서

영토를 시찰하고, 수렵을 한 후에 돌아왔다.

 

백잔(百殘), 신라(新羅)는 옛부터 고구려 속민(屬民)으로 조공(朝貢)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辛卯年)(391년)에 건너와 백잔(百殘)을 파(破)하고 (2字缺) 신라(新羅) … 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영락(永樂) 6년(396년) 병신(丙申)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3字 不明)하여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 미추성,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 … 등을 공취(攻取)하고,

그 수도(首都)를 … 하였다. 백잔(百殘)이 의(義)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정병(精兵)을

보내어 그 수도(首都)에 육박하였다. (百殘軍이 퇴각하니 … )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백잔주((百)殘主)가 곤핍(困逼)해져, 남녀(男女) 생구(生口) 1천 명과 세포(細布)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구려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태왕은 (百殘主가 저지른)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잔주(百殘主)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영락 8년(398년) 무술(戊戌)에 한 부대의 군사를 파견하여 백신(帛愼 :息愼, 肅愼) 토곡(土谷)을 관찰(觀察), 순시(巡視)하였으며

그 때에 (이 지역에 살던 저항적인) 모▨라성(莫▨羅城) 가태라곡(加太羅谷)의 남녀 삼백여 인을 잡아왔다.

이 이후로 (帛愼은 고구려 조정에) 조공(朝貢)을 하고 (그 내부의 일을) 보고하며 (고구려의) 명(命)을 받았다.

 

영락(永樂) 9年(399년) 기해(己亥)에 백잔(百殘)이 맹서를 어기고 왜(倭)와 화통하였다.

(이에) 왕이 평양으로 행차하여 내려갔다. 그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왜인(倭人)이 그 국경(國境)에 가득 차 성지(城池)를 부수고 노객(奴客)으로 하여금 왜(倭)의 민(民)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귀의(歸依)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왕(太王)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 사신을 보내면서

(고구려측의) 계책을 (알려주어)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10년(400년) 경자(庚子)에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을 거쳐 신라성(新羅城 : 國都)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官軍)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벌성(從拔城)에 이르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안라인 수병(安羅人戍兵) … 신라성(新羅城) ▨성(▨城) … 하였고,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이하 77자 중 거의 대부분이 불명. 대체로 고구려군의 원정에 따른 임나가라지역에서의 전투와 정세변동을 서술하였을 것이다).

옛적에는 신라 매금(寐錦)이 몸소 고구려에 와서 보고를 하며 청명(聽命)을 한 일이 없었는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대(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代)에 이르러 (이번의 원정으로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니)

신라 매금이 … 하여 (스스로 와서) 조공(朝貢)하였다.

 

14년(404년) 갑진(甲辰)에 왜(倭)가 법도(法度)를 지키지 않고 대방(帶方) 지역에 침입하였다.

… 석성(石城) (을 공격하고 … ), 연선(連船 : 水軍을 동원하였다는 뜻인 듯) … (이에 왕이 군대를 끌고) 평양을 거쳐

( … 로 나아가) 서로 맞부딪치게 되었다. 왕의 군대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로 공격하니, 왜구가 궤멸하였다.

(왜구를)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

 

17년(407년) 정미(丁未)에 왕의 명령으로 보군과 마군 도합 5만 명을 파견하여 … 합전(合戰)하여 모조리 살상하여 분쇄하였다.

노획한 (적병의) 갑옷이 만여 벌이며, 그 밖에 군수물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또 사구성(沙溝城) 루성(婁城) ▨주성(▨住城) ▨城▨▨▨▨▨▨城을 파하였다.

 

20년(410년) 경술(庚戌), 동부여는 옛적에 추모왕의 속민(屬民)이었는데, 중간에 배반하여 (고구려에) 조공을 하지 않게 되었다.

왕이 친히 군대를 끌고가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여성(餘城 : 동부여의 왕성)에 도달하자, 동부여의 온나라가 놀라 두려워하여

(투항하였다). 왕의 은덕이 동부여의 모든 곳에 두루 미치게 되었다. 이에 개선을 하였다.

이때에 왕의 교화를 사모하여 개선군(凱旋軍)을 따라 함께 온 자는 미구루압로(味仇婁鴨盧), 비사마압로(卑斯麻鴨盧),

타사루압로(椯社婁鴨盧), 숙사사압로(肅斯舍鴨盧), ▨▨▨압로(▨▨▨鴨盧)였다.

무릇 공파(攻破)한 성(城)이 64개, 촌(村)이 1,400이었다.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守墓人) 연호(烟戶)(의 그 出身地와 戶數는 다음과 같이 한다.)

매구여(賣句余) 민은 국연(國烟)이 2가(家), 간연(看烟)이 3가(家). 동해고(東海賈)는 국연이 3가, 간연이 5가.

돈성(敦城)의 民은 4가(家)가 다 간연. 우성(于城)의 1가는 간연으로, 비리성(碑利城)의 2가는 국연.

평양성민(平穰城民)은 국연 1가, 간연 10가(家). 자련(訾連)의 2가(家)는 간연. 배루인(俳婁人)은 국연 1가, 간연 43가.

양곡(梁谷) 2가는 간연. 양성(梁城) 2가는 간연. 안부련(安夫連)의 22가는 간연. 개곡(改谷)의 3가는 간연.

신성(新城)의 3가는 간연. 남소성(南蘇城)의 1가는 국연. 새로 약취(略取)해온 한(韓)과 예(穢)(의 烟戶는 다음과 같다.)

사수성(沙水城)은 국연 1가, 간연 1가. 모루성(牟婁城)의 2가는 간연. 두비압잠(豆比鴨岑) 한(韓)의 5가는 간연.

구모객두(勾牟客頭)의 2가는 간연. 구저한(求底韓)의 1가는 간연. 사조성(舍蔦城)의 한예(韓穢)는 국연 3가, 간연 21가.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의 1가는 간연. 경고성(炅古城)은 국연 1가, 간연 3가. 객현한(客賢韓)의 1가는 간연.

아단성(阿旦城)과 잡진성(雜珍城)은 합하여 10가가 간연. 파노성(巴奴城) 한(韓)은 9가가 간연. 구모로성(臼模盧城)의 4가는 간연.

각모로성(各模盧城)의 2가는 간연. 모수성(牟水城)의 3가는 간연. 간저리성(幹氐利城)은 국연 1가, 간연 3가.

미추성(彌鄒城)은 국연 1가, 간연이 7가. 야리성(也利城)은 3가가 간연. 두노성(豆奴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2가.

오리성(奧利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8가. 수추성(須鄒城)은 국연이 2가, 간연이 5가.

백잔남거한(百殘南居韓)은 국연이 1가, 간연이 5가. 태산한성(太山韓城)의 6가는 간연. 풍매성(農賣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7가.

윤노성(閏奴城)은 국연이 2가, 간연이 22가. 고무루성(古牟婁城)은 국연이 2가, 간연이 8가. 전성(瑑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8가.

미성(味城)은 6가가 간연. 취자성(就咨城)은 5가가 간연. 삼양성(彡穰城)은 24가가 간연. 산나성(散那城)은 1가가 국연.

나단성(那旦城)은 1가가 간연(看烟). 구모성(勾牟城)은 1가가 간연. 어리성(於利城)의 8가는 간연.

비리성(比利城)의 3가는 간연. 세성(細城)의 3가는 간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이 살아 계실 때에 교(敎)를 내려 말하기를,

‘선조(先祖) 왕들이 다만 원근(遠近)에 사는 구민(舊民)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지키며 소제를 맡게 하였는데,

나는 이들 구민들이 점점 몰락하게 될 것이 염려된다. 만일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편안히 수묘하는 일에는,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고 하였다.

왕의 말씀이 이와 같았으므로 그에 따라 한(韓)과 예(穢)의 220가(家)를 데려다가 수묘케 하였다. 그

런데 그들 한인과 예인들이 수묘의 예법(禮法)을 잘 모를 것이 염려되어, 다시 구민(舊民) 110가(家)를 더 데려왔다.

신(新)·구(舊) 수묘호를 합쳐, 국연(國烟)이 30가(家)이고 간연(看烟)이 300가(家)로서, 도합(都合) 330가(家)이다.

 

선조(先祖) 왕들 이래로 능묘에 석비(石碑)를 세우지 않았기 떄문에 수묘인 연호(烟戶)들이 섞갈리게 되었다.

오직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께서 선조(先祖) 왕들을 위해 묘상(墓上)에 비(碑)를 세우고

그 연호(烟戶)를 새겨 기록하여 착오가 없게 하라고 명하였다. 또한 왕께서 규정을 제정하시어,

‘수묘인을 이제부터 다시 서로 팔아넘기지 못하며, 비록 부유한 자가 있을 지라도 또한 함부로 사들이지 못할 것이니,

만약 이 법령을 위반하는 자가 있으면, 판 자는 형벌을 받을 것이고, 산 자는 자신이 수묘(守墓)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1992)]

번역자: 노태돈(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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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문(북한 번역문)

 

옛적 시조 추모왕이 나라의 터전을 처음 잡을 때 북부여에서 나왔다.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인데 알을 깨고 세상에 태여났다. 나면서부터 어진 덕이 있었다.

… 수레를 메울 것을 지시하여 돌아다니면서 남으로 내려오는데, 길이 부여의 엄리대수를 거치게 되였다.

왕이 나룻가에서 말하기를“나는 황천(하늘, 하느님)의 아들이요, 어머니가 하백의 딸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자라들을 줄짓게 하고 거부기를 뜨게 하라!”고 하였다.

말이 떨어지자 곧 자라들이 줄을 짓고 거부기들이 떠올랐으니 그런 다음에 건늘수 있었고,

비류골 홀본 서쪽에 있으면서 산 우에 성을 쌓고 수도를 세웠다.

인간세상의 왕위에 있는 것을 즐겨하지 않으므로 황룡을 보내어 내려와서 왕을 맞이하게 하니

왕이 홀본 동쪽 언덕에 있는데 황룡이 업고 하늘로 올라갔다.

 

세자 유류왕에게 유언으로 지시하여 도리로써 잘 다스리도록 하였다.

대주류왕은 나라의 기초를 이어받았고

17세손인 국강상 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게 미치게 되었다.

 

왕은 18살에 왕위에 올라 영락대왕이라 일렀는데 은정과 혜택은 하늘에 가득찼고 위엄과 무공은 온 세상을 가득 덮었으며

(옳지 못한 자들을) 없애치우고 생업을 편안케 하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고 5곡이 풍요하게 무르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돌보지 않아 39살에 돌아가고 나라를 버리였다.

갑인년 9월 29일 을유일에 산릉에 옮겨 모시고 이에 비석을 세워 그 훈공과 업적을 새겨놓음으로써 후세에 보이는 바이다.

 

그 글에 이르기를

 

영락 5년 을미가 되는 해에 왕은 비려가(우리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음으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는데

부산을 지나 산을 등지고 염수가에 가서 그 3개 부락과 600~700영(營)을 격파하니, 소와·말,·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에 수레를 돌리어 돌아오는 길에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력성, 북풍으로 왔다.

왕이 사냥을 준비하고 지경 안을 유람하면서 사냥을 하고서 돌아왔다.

 

백잔(백제)과 신라(新羅)는 옛적에 속민(屬民)이였고 그전부터 조공을 바쳐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가(백제의 꾀임으로) 신묘년(391년)에 왔기에 (패수를) 건너서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초유)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6년 병신년에 왕이 직접 수군을 거느리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군사들이...남으로 공격하여 호(?)팔성, 구모토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고사조성, 아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수야라성, ▨▨성, ▨▨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농매성, 두노성, 비성, ▨리성, 미추성,

야리성, 대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종성,

미성, ▨▨성, ▨▨성, ▨▨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발성, 종고로성, 구천성, ▨▨▨성을

취하고, 그 국성(수도성)에 (핍박)하였다.

백잔은 의리를 따르지 않고 감히 나와서 온갖 방법으로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선봉군을 보내여 성으로 육박하게 하니

백잔 군사들이 자기 소굴로 돌아갔다. 뒤따라서 성을 포위하니 백잔 임금(主)이 궁박하게 되어 남녀 생구(노비) 1,000명과

가는베 1,000필을 바치고 왕 앞에 무릎꿇고 스스로 맹세하기를 《이제부터는 영원토록 노객구히 고구려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태왕은 은혜롭게도 앞서 잘못을 범한 허물을 용서하고 그가 후에는 순종하게된 성의를 인정해주었다.

이에 58성 700촌을 얻었고 백잔 임금의 아우와 대신 10명을 데리고 군사를 돌리어 수도로 되돌아왔다.

 

8년 무술년에 일부 부대 부대를 파견하여 식신 땅의 골짜기들을 돌아보게 하고 그 기회에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의 남녀 300여 명을

습격하여 잡아왔더니 이때부터 (식신이) 조공하고 사업보고와 토의를 하게 되였다.

 

9년 기해년에 백잔이 맹서를 어기고 왜와 더불어 화의를 맺고 통하였다.

왕이 돌아보면서 평양으로 내려오니(또는 아래《남》평양을 돌아보는데) 신라가 사신을 보내여 아뢰기를,

왜인이 그 나라 경계지방에 가득 차서 성들을 무너뜨리고 있는데 노객(신라왕)은 (태왕의) 신민으로서 왕에게로 와서 지시를 주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태왕이 은혜롭고 자애로와 그의 충성함을 칭찬하고 사신을 보내였으며 또 비밀계획을 알려주게 하였다.

 

10년 경자년에 보병, 기병 5만 명을 보내어 가서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남거성에서부터 신라성으로 가니 왜가 그안에 가득 찼다.

관군(官軍)이 바야흐로 도착하니 왜적이 물러갔다. 왜의 뒤로부터 쫓아가서 급히 임나가라의 종벌성에 이르렀더니

성이 곧 귀순, 항복하였다. 순라병과 수비병을 두었다. 신라의 성염(?)성을 함락시키니 왜구가 이로 인하여 궤멸되고

성안 사람 열에 아홉은 다 왜를 따르기를 거절하였다.

순라병과 수비병을 두었다. (신라성)...(2~3면 약 50자분은 륵멸하여 보이지 않음) 백잔과 왜의 군사들(또는 남은 왜적들)이

무너지고 달아났다. 그 성을 함락시키고 순라병과 수비병을 두었다.

옛적에는 신라 매금이 직접와서 사업보고, 토의를 한 일이 없었으나 국강상 광개토경호태왕때에 와서 (왜구를 공파하니)

매금이 가복이라고 자칭하면서 ...요청하였고...조공을 하게 된 것이다.

 

14년 갑진년에 왜(倭)가 분수없이 대방지경에 침입하였다.(그들은) 백잔 군대와 서로 통하였으며

… 석성(으로부터)...배를 련이어 가지고...(침입)하였다.

왕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할 새 평양에서부터 (남으로 진격하였다. 선봉이)

서로 조우하자 왕당이 맞서 잘라(치면서) 무찔렀다.왜구가 무너지니 참살한 것이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17년 정미년에 보병, 기병 5만 명을 보내어 … 맞서 싸워 다 베어 죽였다.

토획한 갑옷이 10,000여 벌이나 되고 군수물자, 기계류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밖에도 사구성, 루성, 우주성, ▨성, ▨▨▨성, 나(?)▨성을 깨뜨렸다.

 

20년 경술년 동부여는 옛날에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중간에 배반하여 공납을 하지 않았다

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군사들이 여성(부여 수도성)에 이르렀다.

그런데 부여는...(온)나라가 놀라서 복속하였다....왕의 은혜가(부여 땅에) 널리 퍼지였다.

이에 개선하여 귀환하였다. 또 그 나라에서 왕의 은덕을 사모하여 관(왕)을 따라온 자들은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단사, 루압로,

숙사사압로, ▨▨▨압로이다. 무릇 공파한 성이 64개요, 촌이 1,400개이다.

 

묘지기연호로서는 매구여민은 국연이 둘이고, 간연이 셋이며. 동해고(賈)는 국연이 셋이고 간연이 다섯이며.

돈성민은 네 집이 다 간연이고. 오성은 한집이 간연이며, 비리성은 두집이 국연이다.

평양성민은 국연이 하나이고, 간연이 열이며. 자련은 두집이 간연이고. 배루인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마흔셋이며.

량곡은 두집이 간연이고. 량성은 두집이 간연이며. 안부련은 스물두집이 간연이고. 개곡은 세집이 간연이며.

신성은 세집이 간연이고. 남소성은 한집이 국연이다.

새로 온 한, 예로서는 사수성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하나이고. 모루성은 두집이 간연이며.

두비압잠한은 다섯집이 간연이고. 구모객두는 두집이 간연이며. 구저한은 한집이 간연이고.

사조성한, 예는 국연이 셋이고, 간연이 스물하나이며. 고수야라성은 한집이 간연이고.

경고성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셋이며. 객현한은 한 집이 간연이고. 아차성, 잡진성은 합해서 열집이 간연이며.

파노성한은 아홉 집이 간연이고. 구모로성은 네집이 간연이고. 각모로성은 두집이 간연이며. 모수성은 세집이 간연이고.

간저리성은 국연이 둘이고, 간연이 셋이며. 미추성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일곱이다. 야리성은 세집이 간연이고.

두노성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둘이며. 오리성은 국연이 둘, 간연이 여덟이고. 수추성은 국연이 둘, 간연이 다섯이며.

백잔남거한(百殘南居韓)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다섯이며. 대산한성은 여섯집이 간연이다. 농매성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일곱이며.

윤노성은 국연이 둘에 간연이 스물둘이고. 고모루성은 국연이 둘, 간연이 여덟이고. 전성은 국연이 하나, 간연이 여덟이다.

미성은 여섯집이 간연이고. 취자성은 다섯집이 간연이며. 삼양성은 네집이 간연이고. 산나성은 한집이 국연이고.

나단성은 한집이 간연이며. 구모성은 한집이 간연이고. 어리성은 여덟집이 간연이며. 비리성은 세집이 간연이고.

세성은 세집이 간연이다.

 

국강상 광개토경호태왕이 생존시에 가르치시기를 조상왕들은 다만 멀고 가까운 곳의 오랜 백성들을 데려다 무덤을 지키고

청소하도록 하라고 하였으나, 나는 오랜 백성이들 시간이 갈수록 약화될까봐 근심된다.

내가 죽은 후에 무덤을 지키는 자는 다만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붙잡아 온 한, 예들만을 데려다가 청소를 시키도록 준비하라고 하였다.

가르치심이 이러하였으므로 한, 예 220집을 취하게끔 지시하고 그들이 법을 모를 것을 우려하여 다시 오랜 백성 110을 취하였으니

새롭고 오랜 백성의 묘지기호수를 합하여, 국연이 30, 간연이 300, 도합(都合) 330집이다.

 

선조왕 이래로 무덤가에 비석을 세우지 않아서 묘지기호수에 차착이 일어나게 하였는데

오직 국강상 광개토경호태왕이 선조왕 모두를 위하여 무덤가에 비석을 세우고 그 연호를 새김으로써 차착이 없게 하였다.

또 법으로 명령하기를 묘지기는 지금부터는 서로 팔아넘길수 없으며, 비록 부유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매매할 수 없다.

법령을 어기는 경우에는 판 자는 형벌을 씌우고, 산 자는 묘지기를 하도록 명령한다.(법으로 제정하였다)

 

출전 : 광개토왕릉비문연구(북한 사회과학원, 도서출판 중심 펴냄, 2001년 5월 18일 발행)

번역자: 손영종(북한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