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우왕좌왕, 山으로 가는 國政

상 상 2015. 1. 30. 17:29

출처: 입력 : 2015.01.30 03:00

 

[연말정산건보료··조율 없이 문제 터지면 '네탓 공방']

 

소신 정부 - 정책 내놨다 여론 반대하면 백지화·수정

책임 여당 - 표만 의식해 정부정책 나오는 족족 제동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방안, 발표 하루 앞두고 백지화장기 국정 과제도 오락가락

1%대 주택대출 발표 이틀만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감당못할 개혁은 과유불급"

'증세없는 복지' 대통령 공약도 여당서 재검토 필요성 제기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백지화하거나 수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또 정부와 여당이 사전에 제대로 된 당정(黨政) 협의는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모습도 자주 보이고 있다. 공무원들과 여당 의원들조차도 "정부는 일관성도 소신도 없이 무력하고, 여당은 무조건 여론과 표()만 의식한다""그 사이에서 국가 장래가 좌우되는 정책들은 표류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누리당은 요즘 연일 정부 정책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29일 정부가 시중은행을 통해 연 1%대 저금리 수익공유형 주택 대출을 도입하기로 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좋은 정책 아이디어도 탄탄한 재정적 뒷받침과 정확한 미래 예측성을 가진 제도 설계가 아니면 결국 문제가 되고, 그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1%대 주택 대출이 국민과 시장, 나라 장래 살림에 혼선과 부작용을 주는 부분은 없는지 당 정책위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기 바란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7"올해부터 연 1%대 저리(低利)로 대출받아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대출 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발표한 이 정책을 이틀도 안 돼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에는 정부의 '2015년 주요추진법안'에 비과세소득을 과세소득으로 전환하는 세제 개편 관련 법안이 다수 포함된 데 대해 "증세를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인식하는 것은 무감각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과 관련, "개혁도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가지고 해야 성공을 하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밀어붙이니까 안 된다""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정부 공무원들은 이런 여당에 대해 "여당 맞느냐" "야당보다 더하다" "표만 생각한다"는 불만을 터뜨리지만 정부 스스로 정책을 추진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거둬들인 사례는 연초부터 여러 차례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초되거나 표류하는 원칙과 정책 정리 표 정부는 29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작업'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를 올리고,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내리는 방향으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두고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며 정책을 포기했다. 고소득 직장인의 부담이 느는 만큼 '편법 증세' 논란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제대로 조율을 했는지 의문스러운 장면도 연출됐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백지화된 것은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전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여당은 보통 뒤에서 조율을 시도했지만 요즘은 대놓고 비난을 한다. 이날도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중해야 할 정부의 정책 추진이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다""조령모개식 정책 추진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했다.

 

여당이 이런 모습을 보이자 정부가 지레 정책을 철회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을 올해도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12시간여 만에 번복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증세(增稅)에 대한 반발 여론과 이를 의식한 새누리당의 비판 때문"이라는 해석이 공무원들 사이에선 나온다.

 

··청이 이런 식이다 보니 정책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연초 있었던 연말정산 파동은 대표적인 사례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꿔 고소득자의 세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했지만, 세금이 늘어난 직장인들의 거센 반발에 놀라 소득세법을 다시 개정키로 했다. 정부·여당은 다자녀 추가 세액공제를 늘리고, 자녀 출생·입양 세액공제를 신설하는 등의 바뀐 연말정산 방식을 2014년도 귀속 소득에까지 소급적용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면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르겠나"라는 불만이 분출하면서 소급적용까지 결정했지만 당내에서조차 "소급적용은 조세법정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증세 없는 복지'라는 원칙에 대해서도 여당 내에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인 나성린 의원은 이날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어떻게 증세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비과세 감면 축소 등으로 세금을 늘리는) '박근혜식 증세'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했다.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잦은 정책 번복에 대해 서울대 행정대학원 권혁주 교수는 "정부가 정책 수립 단계에서 여론 수렴과 사회적 합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하는데 그걸 소홀히 하는 게 문제"라며 "추진하려던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 정책 신뢰성을 훼손하고 정부가 추진하려는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신뢰를 못 주는 악순환을 부를 우려가 있다"고 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당정협의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집권 여당이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호통치는 '사후 약방문'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문제"라며 "집권 여당과 정부가 사전에 충분히 조율을 하고 그 결정에 대해선 당정이 함께 책임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정녹용 기자, 조의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