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부흥운동 (3)...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끝.

상 상 2012. 4. 28. 18:52

사론(史論): 현도와 낙랑은 본래 조선의 땅인데 기자가 봉해졌던 곳이다.

기자가 그 백성들에게 예의와 농사, 누에치기, 옷감짜기를 가르치고

법금(法禁) 8조를 두었다. 이리하여 그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하지 않고 문을 닫지 않았으며,

부인이 정조와 신의를 지켜 음란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데 변두(籩豆)를 사용하였으니, 이것은 어진 이의 교화 덕택이다.

 

또 천성이 유순하여 3방(三方)과 달랐으므로,

공자(孔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슬퍼하고 바다에 배를 띄워 [건너 와서] 이곳에 살려고 하였던 것도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경(易經)의 효사(爻辭)에 『2는 칭찬이 많고, 4는 두려움이 많다. 가깝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고구려는 진한시대 이후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었다.

그 북쪽 이웃은 모두 천자의 관리로서, 난세에는 영웅으로 빼어나서 이름과 자리를 함부로 도둑질하였으니,

가히 두려움이 많은 땅에 거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겸손한 뜻이 없고 중국의 봉토(封土)를 침략하여 원수를 만들고, 그 군현에 들어가 살았다.

이 때문에 전쟁이 이어지고 화가 맺어져 거의 편안할 때가 없었다.

 

[고구려는]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고 수나라와 당나라가 통일한 때를 만나고도,

오히려 천자의 명에 거역하여 순종하지 않고, 천자의 사신을 토굴에 가두었다.

그 완고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으므로 여러번 죄를 묻는 군사를 불러들였다.

 

비록 혹시 기이한 계책을 세워 대군을 이긴 적도 있었으나, 마침내 왕이 항복하고 나라가 멸망한 후에야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을 보면, 위아래가 화합하고 많은 무리들이 화목할 때는 비록 대국이라도 빼앗을 수 없었는데,

나라에 대해서 불의하고 백성에게 어질지 못하여, 무리의 원망을 일으키는 데에 이르면 무너져 스스로 떨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이렇게 말하였다.『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이 사람의 화목만 같지 못하다.』

좌씨(左氏)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라가 흥하는 것은 복으로 말미암는 것이고, 망하는 것은 화로 말미암는 것이다.

나라가 흥할 때에는 백성을 대하기를 자기가 상처를 입은 것같이 하니 이것이 그 복이요,

나라가 망할 때에는 백성을 흙이나 풀과 같이 보니 이것이 그 화이다.』

이 말들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릇 나라를 가진 자로서,

포악한 관리가 윽박지르고 권세가가 함부로 거두어 들이도록 내버려 두어 인심을 잃는다면,

비록 잘 다스려 어지럽지 않게 하고, 보존하여 망하지 않게 하려 해도,

[이것이] 어찌 억지로 술을 먹고 취하기를 싫어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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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여기에 나오는 사론은 고구려 역사에 대한 김부식의 사론입니다.

이 사론은 중국중심 사관을 보이고 있어 이런 것 때문에 김부식이 매도를 당하고 있습니다.

 

2) 여기 사론을 보면 삼국사기 본문에는 없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몇가지 써 놓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그러나 겸손한 뜻이 없고 중국의 봉토(封土)를 침략하여 원수를 만들고, 그 군현에 들어가 살았다.

이 때문에 전쟁이 이어지고 화가 맺어져 거의 편안할 때가 없었다.

 

[고구려는]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고 수나라와 당나라가 통일한 때를 만나고도,

오히려 천자의 명에 거역하여 순종하지 않고, 천자의 사신을 토굴에 가두었다.

그 완고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으므로 여러번 죄를 묻는 군사를 불러들였다.

 

비록 혹시 기이한 계책을 세워 대군을 이긴 적도 있었으나,

마침내 왕이 항복하고 나라가 멸망한 후에야 그치게 되었다.

 

⇒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사실

 

첫째, 고구려가 중국 땅에 쳐들어가 중국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살았다.

(고구려가 중국에 당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중국을 공격하여 땅을 빼앗고 거기서 살았다.)

 

둘째, 중국이 분열되었을 때는 물론이고 중국이 통일되었을 때에도

중국 황제의 말을 우습게 알았고 드디어 중국 사신을 토굴에 가두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무슨 중국의 군주가 고구려 왕을 책봉했다느니, 고구려 왕으로 삼았다고 하는 말은 터무니 없는 말임.)

 

② 그러나 처음과 끝을 보면,

위아래가 화합하고 많은 무리들이 화목할 때는 비록 대국이라도 빼앗을 수 없었는데,

나라에 대해서 불의하고 백성에게 어질지 못하여, 무리의 원망을 일으키는 데에 이르면 무너져 스스로 떨칠 수 없게 되었다.

⇒ 우리민족이 화합하고 화목하면 어떠한 큰 나라도 우리민족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위 아래가 틀어지고 분열이 일어나면 스스로 무너진다.(우리민족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 고구려의 붕괴는 형제간의 싸움으로 스스로 무너진 것임)

 

3) 이로써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마칩니다.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 편부터 마지막 28대 보장왕, 그리고 고구려 부흥운동까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있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