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부흥운동 (1)

상 상 2012. 4. 26. 19:03

1 년 (AD 669) : [총장] 2년 기사년 2월에 안승이 신라에 투항

[번역문]

[총장] 2년 기사년(669) 2월에 왕의 서자(庶子) 안승(安勝)이 4천여 호를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하였다.

여름 4월에 고종이 3만 8천3백 호를 강회(江淮)의 남쪽과 산남(山南)·경서(京西) 여러 주의 빈 땅으로 옮겼다.

 

2 년 (AD 670) : 경오년 4월에 검모잠이 고구려부흥운동

[번역문]

함형(咸亨) 원년 경오년(670) 여름 4월에 이르러 검모잠(劍牟岑)이 나라를 부흥하려고 당나라에 배반하여,

왕의 외손 안순(安舜)<[순(舜)을] 신라기(新羅紀)에는 승(勝)이라고 썼다.>을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

 

당나라 고종이 대장군 고간을 보내 [그를] 동주도(東州道) 행군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내어 그들을 토벌하니, 안순은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3 년 (AD 671) : 신미년 7월에 고간이 안시성에서 남은 무리를

[번역문]

3년 신미년(671) 가을 7월에 고간이 안시성에서 남은 무리를 깨뜨렸다.

 

4 년 (AD 672) : 고간이 우리의 남은 무리와 백수산에서 싸워

[번역문]

3년 임신년(672) 12월에 고간이 우리의 남은 무리와 백수산(白水山)에서 싸워 그들을 깨뜨렸다.

신라가 군사를 보내 우리를 구원하였으나, 고간이 쳐서 이기고 2천 명을 사로잡았다.

 

5 년 (AD 673) : 계유년 윤5월에 이근행이 호로하에서

[번역문]

4년 계유년(673) 여름 윤5월에 연산도(燕山道) 총관 대장군 이근행(李謹行)이

호로하(瓠濾河)에서 우리나라 군사들을 깨뜨리고 수천 명을 사로잡으니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신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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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고구려가 망할 때 69만 여호라고 했습니다.

 

[총장] 2년 기사년(669년) 2월에 거기서 처음 떨어져 나간 무리가 안승(安勝)이며

4천여 호를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합니다. 역시 동족의 땅으로 달아납니다.

고구려가 망한 지 1년 만입니다.

 

2) 여름 4월에 고종이 3만 8천3백 호를 강회(江淮)의 남쪽과 산남(山南)·경서(京西) 여러 주의 빈 땅으로 옮깁니다.

 

3) 고구려 멸망후 2년(670년) 여름 4월에 검모잠이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킵니다.

신라로 갔던 안승을 왕으로 세웁니다.

 

이에 대해 당나라 고종은 고간을 보내 [그를] 동주도(東州道) 행군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내어 그들을 토벌하니, 안순(안승)은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납니다.

 

4) 고구려 멸망후 3년(671년) 가을 7월에 고간이 안시성에서 남은 무리를 깨뜨립니다.

이것을 보면 안시성은 고구려가 망한 후에도 당에 항복하지 않고 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고구려가 망한 후 4년(672년) 12월에 고간이 우리의 남은 무리와 백수산(白水山)에서 싸웁니다.

이것을 보면 아직도 고구려 유민이 당에 항복하지 않고 당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고구려 망한 후 ‘5년(673년) 계유년 윤5월에 이근행이 호로하에서’ 기사를 보면,

고구려 유민이 당에 항복하지 않고 계속 당과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대규모로 당과 싸워 연산도(燕山道) 총관 대장군 이근행을 파견하여 겨우 진압합니다.

이 전쟁에서 수천명이 포로로 잡히고 나머지 많은 무리들이 또, 신라로 모두 달아납니다.

계속해서 신라로 고구려 유민들이 유입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