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38, 삼국사기 신라 본기 -27 (43대 희강왕 본기)

상 상 2015. 9. 25. 17:33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38, 삼국사기 신라 본기 -27 (43대 희강왕 본기)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19. 삼국사기 신라 본기의 출처:

1) 원 출처는 네이트(nate). 그러나 현재 네이트에 있는 삼국사기는 폐쇄되어 찾아볼 수 없음

2) 지금 삼국사기를 볼 수 있는 싸이트는 네이버로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싸이트 주소( http://terms.naver.com/list.nhn?cid=49615&categoryId=49615 )

 

 

< 삼국사기 신라 43대 희강왕 본기 >

희강왕

 

0 (AD 836) : 희강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희강왕(僖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제륭(悌隆)이다.<또는 제옹(悌顒)이라고도 하였다.> 원성대왕의 손자 이찬 헌정(憲貞)<또는 초노(草奴)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포도부인(包道夫人)이다. 왕비는 문목부인(文穆夫人)인데 갈문왕 충공(忠恭)의 딸이다. 이보다 앞서 흥덕왕이 죽자 그의 사촌 아우[堂弟] 균정과 [다른] 사촌 아우의 아들 제륭이 모두 임금이 되고자 하였다. 이에 시중 김명과 아찬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었고, 아찬 우징(祐徵)은 조카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과 함께 그의 아버지 균정을 받들어 한꺼번에 궁궐로 들어가 서로 싸웠다. 김양이 화살에 맞아 우징 등과 함께 도망해 달아나고 균정은 살해되었다. 그런 다음에 제륭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원문]

僖康王立 諱悌隆 一云悌顒 元聖大王孫伊湌憲貞一云草奴之子也 母包道夫人 妃文穆夫人 葛文王忠恭之女 初興德王之薨也 其堂弟均貞 堂弟之子悌隆 皆欲爲君 於是 侍中金明 阿湌利弘·裴萱伯等 奉悌隆 阿湌祐徵與姪禮徵及金陽 奉其父均貞 一時入內相戰 金陽中箭

與祐徵等逃走 均貞遇害 而後悌隆乃得卽位

 

2 (AD 837) : 사형죄 이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번역문]

2(837) 봄 정월에 사형죄 이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왕의 죽은 아버지를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하고, 어머니 박씨를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삼았다. 시중 김명을 상대등으로 삼고, 아찬 이홍을 시중으로 삼았다. 여름 4월에 당나라 문종이 숙위하던 왕자 김의종(金義琮)을 돌려 보냈다. 아찬 우징은 그의 아버지 균정이 해를 입은 것에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했는데, 김명과 이홍 등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5월에 우징이 화가 미칠까 두려워 그의 처·자식과 함께 황산진(黃山津) 어구로 달아나,

배를 타고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궁복(弓福)에게 가서 의탁하였다.

6월에 균정의 매부 아찬 예징(禮徵)이 아찬 양순(良順)과 함께 도망하여 우징에게 의지하였다. 당나라 문종이 숙위하던 김충신(金忠信) 등에게 비단을 차등있게 내려 주었다.

 

[원문]

二年 春正月 大赦獄囚殊[주석1]死已下 追封考爲翌成大王 母朴氏爲順成太[주석2]后 拜侍中金明爲上大等 阿湌利弘爲侍中 夏四月 唐文宗 放還宿衛王子金義琮 阿湌祐徵 以父均貞遇害 出怨言 金明· 利弘等不平之 五月 祐徵懼禍及 與妻子奔黃山津口 乘舟往依 於淸海鎭大使弓福 六月 均貞妹壻阿湌禮徵與阿湌良順 亡投於祐徵 唐文宗賜宿衛金忠信等錦綵有差

 

 

3 (AD 838) : 김명과 시중 이홍 등이 난을 일으키고

[번역문]

3(838) 봄 정월에 상대등 김명과 시중 이홍 등이 군사를 움직여 난을 일으키고 왕의 좌우 측근들을 죽이니, 왕은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시호를 희강(僖康)이라 하고 소산(蘇山)에 장사지냈다.

 

[원문]

三年 春正月 上大等金明 侍中利弘等 興兵作亂 害王左右 王知不能自全 乃縊於宮中 諡曰僖康 葬于蘇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