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분석- 5

상 상 2015. 6. 5. 15:37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규명(糾明)- 5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내용 5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

사 료

내 용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엄시수(淹㴲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은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러<위서(魏書)에는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 주몽은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삼베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재사(再思)입니다.”라고 하였고, 중 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무골(武骨)입니다.”라고 하였고, 마름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默居)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성들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씨(克氏), 무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에게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 그리고 무리에게 일러 말하였다.“내가 이제 하늘의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각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로써 성을 삼았다.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은 왕위를 이었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이 해는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

 

朱蒙乃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㴲水 一名盖斯水 在今鴨淥東北 欲渡無梁 恐爲追兵所迫 告水曰 我是天帝子 河[주석9]伯外孫[주석10]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於是 魚鼈浮出成橋 朱蒙得渡 魚鼈乃解 追騎不得渡 朱蒙行至毛屯谷 魏書云 至普述水遇三人 其一人着麻衣 一人着衲衣 一人着水藻衣 朱蒙問曰 子等何許人也 何姓何名乎麻衣者曰 名再思衲衣者曰 名武骨水藻衣者曰 名默居而不言姓 朱蒙賜再思姓克氏 武骨仲室氏 默居少室氏 乃告於衆曰 我方承景命 欲啓元基 而適遇此三賢 豈非天賜乎遂揆其能 各任以事 與之俱至卒本川 魏書云至紇升骨城觀其土壤肥美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宮室 但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高句麗 因以高爲氏 一云 朱蒙至卒本扶餘 王無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其女妻之 王薨 朱蒙嗣位時朱蒙年二十二歲 是漢孝元帝建昭二年 新羅始祖赫居世二十一年甲申歲也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 暗結三賢友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 其人共多智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등 세 사람이었다.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 南行至淹滯

일명 개사수(蓋斯水)인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 欲渡無舟艤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 秉策指彼蒼

개연히 긴 탄식을 발한다 / 慨然發長喟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 天孫河伯甥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소 / 避難至於此

불쌍한 고자의 마음을 / 哀哀孤子心

황천 후토가 차마 버리시리까 / 天地其忍棄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 操弓打河水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 魚鼈騈首尾

높직이 다리를 이루어 / 屹然成橋梯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 始乃得渡矣

조금 뒤에 쫓는 군사 이르러 / 俄爾追兵至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곧 무너졌다 / 上橋橋旋圮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한 쌍 비둘기 보리 물고 날아 / 雙鳩含麥飛

신모의 사자가 되어 왔다 / 來作神母使

 

주몽이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하고 오곡 종자를 싸 주어 보내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아마도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 形勝開王都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 山川鬱嶵巋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 自坐茀蕝上

대강 군신의 위차를 정하였다 / 略定君臣位

 

왕이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임금과 신하의 위차를 정하였다.

 

暗結三賢友其人共多智烏伊摩離陜父等三人南行至淹滯一名蓋斯水在今鴨綠東北欲渡無舟艤欲渡無舟恐追兵奄及迺以策指天慨然嘆曰我天帝之孫河伯之甥今避難至此皇天后土憐我孤子速致舟橋言訖以弓打水魚鼈浮出成橋朱蒙乃得渡良久追兵至秉策指彼蒼慨然發長喟天孫河伯甥避難至於此哀哀孤子心天地其忍棄操弓打河水魚鼈騈首尾屹然成橋梯始乃得渡矣俄爾追兵至上橋橋旋圮追兵至河魚鼈橋卽滅已上橋者皆沒死雙鳩含麥飛來作神母使朱蒙臨別不忍暌違其母曰汝勿以一母爲念乃裹五穀種以送之朱蒙自切生別之心忘其麥子朱蒙息大樹之下有雙鳩來集朱蒙曰應是神母使送麥子乃引弓射之一矢俱擧開喉得麥子以水噴鳩更蘇而飛去云云形勝開王都山川鬱㠑巋自坐茀蕝上略定君臣位王自坐茀蕝之上略定君臣之位

단군고기

(檀君古記)

몰래 오이(烏伊마리(馬離협보(陜父) 3인과 결탁하여 남행(南行)해서 개사수(蓋斯水)에 이르렀는데, 건너려 하여도 배는 없고, 쫓는 군사는 급히 따라오므로,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몹시 분개하여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손자요, 하백(河伯)의 외손인데, 지금 난리를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사오니, 황천 후토(皇天后土)께서는 저 고자(孤子)로 하여금 빨리 주교(舟橋)를 이루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말을 마치고 나서 활로써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와서 다리를 놓아 주몽이 곧 건넜다. 한참 있다 쫓는 군사가 물[]에 이르니 물고기 자라다리[鼈橋]가 갑자기 없어져서, 이미 다리에 올랐던 군사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주몽이 그 어머니를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한 어미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하고, 오곡(五穀)의 씨앗을 싸서 주어 보냈는데, 주몽이 어찌나 생이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던지 그 보리씨를 잊어버리고 떠났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쌍곡(雙鵠)이 날아와 모이니, 주몽이 말하기를, “아마도 이것은 어머니가 보내 주시는 보리씨리라.” 하고, 활을 당기어 쏘았다. 한 화살에 모두 떨어져서, 목구멍을 열고 보리씨를 꺼내고, []을 곡()에게 뿜으니, 다시 소생되어 날아갔다. 왕이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러 비수(沸水) 위에 집을 짓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고()로써 성을 삼고, 풀더미[] 위에 올라앉아서 대략 군신(君臣)의 자리[]를 정하였다.

 

暗結烏伊馬離陜父等三人, 南行至盖斯水, 欲渡無舟, 恐追兵奄及, 乃以策指天, 慨然嘆曰: “, 天帝之孫, 河伯之甥, 今避亂至此皇天后土令我孤子速致舟橋言訖, 以弓打水, 魚鼈浮出成橋, 朱蒙乃得渡良久, 追兵至, 河魚鼈橋卽滅, 已上橋者, 皆沒死朱蒙臨別, 不忍睽違, 其母曰: “汝勿以一母爲念乃裹五穀種以送之, 朱蒙自切生別之心, 忘其麥子朱蒙息大樹之下, 有雙鵠來集, 朱蒙曰: “應是神母使送麥子? 巽肋㾬 一矢俱擧, 開喉得麥子, 以水噴鳩, 更蘇而去王行至卒本川, 廬於沸水之上, 國號爲高句麗, 因以高爲氏坐第蕝之上, 略定君臣之位

위서

고구려전

주몽은 이에 오인 오위(烏引·烏違) 등 두 사람과 함께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도망하였다. 중도에서 큰 강을 하나 만났는데, 건너려 하여도 다리는 없고, 부여 사람들의 추격은 매우 급박하였다. 주몽이 강에 고하기를,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길에 추격하는 군사가 바짝 쫓아오니,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하자, 이 때에 고기와 자라가 함께 떠 올라와 그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이 건넌 뒤 고기와 자라는 금방 흩어져버려 추격하던 기병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은 마침내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러 우연히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삼베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무명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부들고 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주몽과 함께 홀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마침내 정착하고 살면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朱蒙乃與烏引烏違等二人棄夫餘東南走中道遇一大水欲濟無梁夫餘人追之甚急朱蒙告水曰:「我是日子河伯外孫今日逃走追兵垂及如何得濟?」於是魚鼈並浮為之成橋朱蒙得渡魚鼈乃解追騎不得渡朱蒙遂至普述水遇見三人其一人著麻衣一人著納衣一人著水藻衣與朱蒙至紇升骨城遂居焉號曰高句麗因以為氏焉

북사

고구려전

주몽(朱蒙)은 이에 언위(焉違) 등 두 사람과 함께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중도에서 큰 강()을 만났는데, 건너려고 하여도 다리는 없고 부여(夫餘) 사람들의 추격은 매우 급박하였다. 주몽(朱蒙)이 물에 고()하기를,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지금 뒤쫓아 오는 병사들이 들이닥치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하자, 이에 고기와 자라들이 그를 위하여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朱蒙)[물을] 건너고 난 뒤 고기와 자라들은 곧바로 흩어져버려 뒤쫓아 오던 기병(騎兵)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朱蒙)은 마침내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다. 한사람은 삼베옷을, 한사람은 무명옷을, 한사람은 부들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주몽(朱蒙)과 함께 홀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마침내 정착하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朱蒙乃與焉違等二人東南走中道遇一大水欲濟無梁夫餘人追之甚急朱蒙告水曰:「我是日子河伯外孫今追兵垂及如何得濟?」於是魚鼈為之成橋朱蒙得度魚鼈乃解追騎不度朱蒙遂至普述水遇見三人一著麻衣一著衲衣一著水藻衣與朱蒙至紇升骨城遂居焉號曰高句麗因以高為氏

 

 

내용 5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의 비교, 분석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檀君古記), 위서, 북사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삼국사기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의 비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엄시수(淹㴲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 暗結三賢友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 其人共多智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등 세 사람이었다.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 南行至淹滯

일명 개사수(蓋斯水)인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 欲渡無舟艤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 秉策指彼蒼

개연히 긴 탄식을 발한다 / 慨然發長喟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 天孫河伯甥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소 / 避難至於此

불쌍한 고자의 마음을 / 哀哀孤子心

황천 후토가 차마 버리시리까 / 天地其忍棄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 操弓打河水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 魚鼈騈首尾

높직이 다리를 이루어 / 屹然成橋梯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 始乃得渡矣

조금 뒤에 쫓는 군사 이르러 / 俄爾追兵至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곧 무너졌다 / 上橋橋旋圮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주몽은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러<위서(魏書)에는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

 

 

한 쌍 비둘기 보리 물고 날아 / 雙鳩含麥飛

신모의 사자가 되어 왔다 / 來作神母使

 

주몽이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하고 오곡 종자를 싸 주어 보내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아마도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

주몽은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삼베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재사(再思)입니다.”라고 하였고, 중 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무골(武骨)입니다.”라고 하였고, 마름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默居)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성들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씨(克氏), 무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에게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 그리고 무리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이제 하늘의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각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 形勝開王都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 山川鬱嶵巋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 自坐茀蕝上

대강 군신의 위차를 정하였다 / 略定君臣位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로써 성을 삼았다.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은 왕위를 이었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이 해는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

 

 

왕이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임금과 신하의 위차를 정하였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여기있는 삼국사기는 처음 부분만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인용한 것

이고 나머지 부분은 다른 사료를 인용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은 대부분 운문()으로 먼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노래한 다음, 그 뒤를 이어 산문으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운문()을 제거하면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운문()으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노래한 다음 산문으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기술하지 않은 곳이 잇다.

바로 이 부분이 그런 곳인데 여기있는 동명왕편의 시를 제거하면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모르게 되어있다.

그래서 단군고기를 봐야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단군고기를 보면서 삼국사기와 비교해 보자.

 

2. 삼국사기와 단군고기의 비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단군고기(檀君古記)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몰래 오이(烏伊마리(馬離협보(陜父) 3인과 결탁하여 남행(南行)해서

엄시수(淹㴲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개사수(蓋斯水)에 이르렀는데,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건너려 하여도 배는 없고, 쫓는 군사는 급히 따라오므로,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몹시 분개하여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하자

나는 천제(天帝)의 손자요, 하백(河伯)의 외손인데, 지금 난리를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사오니, 황천 후토(皇天后土)께서는 저 고자(孤子)로 하여금 빨리 주교(舟橋)를 이루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말을 마치고 나서 활로써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와서 다리를 놓아 주몽이 곧 건넜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한참 있다 쫓는 군사가 물[]에 이르니 물고기 자라다리[鼈橋]가 갑자기 없어져서, 이미 다리에 올랐던 군사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주몽이 그 어머니를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한 어미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하고, 오곡(五穀)의 씨앗을 싸서 주어 보냈는데, 주몽이 어찌나 생이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던지 그 보리씨를 잊어버리고 떠났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쌍곡(雙鵠)이 날아와 모이니, 주몽이 말하기를, “아마도 이것은 어머니가 보내 주시는 보리씨리라.” 하고, 활을 당기어 쏘았다. 한 화살에 모두 떨어져서, 목구멍을 열고 보리씨를 꺼내고, []을 곡()에게 뿜으니, 다시 소생되어 날아갔다.

주몽은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러<위서(魏書)에는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

 

주몽은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삼베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재사(再思)입니다.”라고 하였고, 중 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무골(武骨)입니다.”라고 하였고, 마름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默居)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성들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씨(克氏), 무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에게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 그리고 무리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이제 하늘의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각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렀다.

왕이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러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비수(沸水) 위에 집을 짓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로써 성을 삼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고()로써 성을 삼고,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은 왕위를 이었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이 해는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

 

 

풀더미[] 위에 올라앉아서 대략 군신(君臣)의 자리[]를 정하였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삼국사기는 역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처음 부분만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는 다른 사료를 인용, 편집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면 않되는 것이 있다.

삼국사기가 단군고기를 인용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동명왕편과 공통

개사수(蓋斯水)

졸본천(卒本川)

비류수(沸流水)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로써 성을 삼았다.

 

이것으로 삼국사기가 단군고기를 인용하였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다시말해서 단군고기는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3. 삼국사기와 위서의 비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위서((魏書) 고구려전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주몽은 이에 오인 오위(烏引·烏違) 등 두 사람과 함께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도망하였다.

엄시수(淹㴲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중도에서 큰 강을 하나 만났는데,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건너려 하여도 다리는 없고, 부여 사람들의 추격은 매우 급박하였다. 주몽이 강에 고하기를,“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길에 추격하는 군사가 바짝 쫓아오니,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하자, 이 때에 고기와 자라가 함께 떠 올라와 그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이 건넌 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고기와 자라는 금방 흩어져버려 추격하던 기병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은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러<위서(魏書)에는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

주몽은 마침내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러 우연히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삼베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무명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부들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주몽은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삼베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재사(再思)입니다.”라고 하였고, 중 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무골(武骨)입니다.”라고 하였고, 마름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默居)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성들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씨(克氏), 무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에게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 그리고 무리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이제 하늘의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각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렀다.

[그들은] 주몽과 함께 홀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마침내 정착하고 살면서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로써 성을 삼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은 왕위를 이었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이 해는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삼국사기는 기본적으로 위서를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세 번째 단락,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부터

세사람을 만났는데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까지 위서를 인용하고 있고

 

2) 그 다음에 두 단락을 건너뛰어, 함께 홀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

3) 다시 한단락을 건너뛰어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는 것은

삼국사기가 위서를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그 나머지는 위서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서, 주몽이 세사람에게 이름을 묻고, 그들에게 극씨(克氏), 중실씨(仲室氏),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는 것.

그 밑에 있는, 그들에게 능력에 맞게 각각 일을 맡겼다는 것.

주몽이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렀다는 것.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는 것.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자 그 왕이 딸을 아내로 삼게 하고, 왕이 죽자 주옴이 왕위를

이었다는 것.

주몽이 왕위에 오른 때가 언제라는 것.

주몽이 오인, 오위 두 사람과 함께 부여를 떠났다는 것.

 

5) 여기서 삼국사기와 구삼국사, 위서의 중요 부분을 한꺼번에 비교해 보자.

삼국사기 동명성와 본기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위서 고구려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

건너려 하여도 다리는 없고, 부여 사람들의 추격은 매우 급박하였다. 주몽이 강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하자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길에 추격하는 군사가 바짝 쫓아오니,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이 때에 고기와 자라가 함께 떠 올라와 그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주몽이 건넌 뒤 고기와 자라는 금방 흩어져버려 추격하던 기병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위에서 보다시피, 삼국사기는 위서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렇게 위서를 인용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주몽이 나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한 점인 바,

이것은 위서에 있는태양의 아들을 고친 것이다.

 

천제(天帝)의 아들이라는 말은 중국의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을 흉내낸 말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주몽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삼국사기 돔영성왕 본기를 보면 천제(天帝)의 아들은 해모수(解慕漱)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유화(주몽의 어머니)가 하는 말이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나를 집으로 꾀어서 사통했다고 함으로써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임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주몽이 나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니 주몽이 해모수란 말인가?

아들이 아버지라는 말인가?

 

김부식이 중국 사서를 무조건 인용하다보니 이와같이 웃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부분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에 있는 바와 같이

주몽이 나는 천제(天帝)의 손자라고 했어야 맞다.

해모수가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므로

주몽은 천제(天帝)의 손자이지 않은가!

 

이렇게 자기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취하다보니

이와같이 우리 역사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역사를 쓴답시고 한 일이 우리 역사를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사대주의자의 말로이다. 이래서 삼국사기에 시비가 붙는다.

중국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그냥 채택하고 내것은 내팽개치다보니

이와같은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삼국사기와 구삼국사를 비교해 보면 구삼국사에 있는신모의 보리종자 이야기

삭제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신화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삼국사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고 하여 전부 삭제하였다.

그런데 위서에 나오는 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역시 신화적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그것은 삼국사기에 그대로 인용하였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료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는 전부 삭제하면서 중국 사료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는

전부 인용하였다.

우리 사료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는 모두 괴력난신(怪力亂神)이고

중국 사료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는 모두 신뢰성이 있는 사실이라는 말인가?

자기 것은 믿을 것이 못되니 버리고 중국 사료에 나오는 것은 무조건 신뢰성이 있고

따라서 우선적으로 인용한다는 태도는 전형적인 사대주의자의 태도이다.

이런 사대주의 태도가 삼국사기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4. 동명왕편과 단군고기의 비교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檀君古記)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 暗結三賢友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 其人共多智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등 세 사람이었다.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 南行至淹滯

일명 개사수(蓋斯水)인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 欲渡無舟艤

몰래 오이(烏伊마리(馬離협보(陜父) 3인과 결탁하여

 

남행(南行)해서

개사수(蓋斯水)에 이르렀는데,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하고,

건너려 하여도 배는 없고, 쫓는 군사는 급히 따라오므로,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몹시 분개하여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손자요, 하백(河伯)의 외손인데, 지금 난리를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사오니, 황천 후토(皇天后土)께서는 저 고자(孤子)로 하여금 빨리 주교(舟橋)를 이루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말을 마치고 나서 활로써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와서 다리를 놓아 주몽이 곧 건넜다. 한참 있다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 秉策指彼蒼

개연히 긴 탄식을 발한다 / 慨然發長喟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 天孫河伯甥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소 / 避難至於此

불쌍한 고자의 마음을 / 哀哀孤子心

황천 후토가 차마 버리시리까 / 天地其忍棄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 操弓打河水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 魚鼈騈首尾

높직이 다리를 이루어 / 屹然成橋梯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 始乃得渡矣

조금 뒤에 쫓는 군사 이르러 / 俄爾追兵至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곧 무너졌다 / 上橋橋旋圮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쫓는 군사가 물[]에 이르니

물고기 자라다리[鼈橋]가 갑자기 없어져서, 이미 다리에 올랐던 군사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한 쌍 비둘기 보리 물고 날아 / 雙鳩含麥飛

신모의 사자가 되어 왔다 / 來作神母使

 

주몽이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하고 오곡 종자를 싸 주어 보내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아마도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

주몽이 그 어머니를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한 어미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하고, 오곡(五穀)의 씨앗을 싸서 주어 보냈는데, 주몽이 어찌나 생이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던지 그 보리씨를 잊어버리고 떠났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쌍곡(雙鵠)이 날아와 모이니, 주몽이 말하기를, “아마도 이것은 어머니가 보내 주시는 보리씨리라.” 하고, 활을 당기어 쏘았다. 한 화살에 모두 떨어져서, 목구멍을 열고 보리씨를 꺼내고, []을 곡()에게 뿜으니, 다시 소생되어 날아갔다.

 

왕이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러

비수(沸水) 위에 집을 짓고,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 形勝開王都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 山川鬱嶵巋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 自坐茀蕝上

대강 군신의 위차를 정하였다 / 略定君臣位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고()로써 성을 삼고,

왕이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임금과 신하의 위차를 정하였다.

풀더미[] 위에 올라앉아서 대략 군신(君臣)의 자리[]를 정하였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여기서는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와 단군고기가 다 같은데 약간 다른 것이 몇 개 있다.

 

< 같은 점 >: 거의 다 같다.

몰래 오이(烏伊마리(馬離협보(陜父)와 남행(南行)

개사수(蓋斯水)에 이르렀다.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다.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신모(神母)의 보리종자 이야기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임금과 신하의 위차를 정하였다.

< 다른 점 >: 단군고기에만 있는 기록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렀다.

비수(沸水) 위에 집을 지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고()로써 성을 삼았다.

 

이렇게 단군고기에만 있는 기록이 정확하게 삼국사기에 인용되었다.

따라서 삼국사기가 단고군기를 인용하였음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말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단군고기가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의 삼국사기는 다양한 사료를 인용하고 있으니 일단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출처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구삼국사

엄시수(淹㴲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구삼국사

단군고기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위서(魏書)

주몽은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러<위서(魏書)에는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

고기(古記)

위서(魏書)

주몽은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삼베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재사(再思)입니다.”라고 하였고, 중 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무골(武骨)입니다.”라고 하였고, 마름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默居)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성들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씨(克氏), 무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에게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 그리고 무리에게 일러 말하였다.

고기(古記)

내가 이제 하늘의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각 일을 맡기고

고기(古記)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렀다.

단군고기

위서(魏書)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고기(古記)

단군고기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로써 성을 삼았다.

단군고기

위서(魏書)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은 왕위를 이었다.>

고기(古記)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이 해는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

구삼국사

 

고기(古記):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까지 우리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옛 기록으로 책 이름(書名)을 알 수 없는

사료, 또는 김부식이 중국의 사료가 아닌 우리 민족의 사료로써 출처를 밝히지 않은 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