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분석- 3

상 상 2015. 6. 5. 14:05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분석- 3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내용 3주몽의 탄생과 어린시절

사 료

내 용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금와는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에 비취어 [유화는] 몸을 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좇아와 비쳤다. 그래서 임신을 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금와]은 알을 버려 개,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후에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은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金蛙異之 幽閉於室中 爲日所炤 引身避之 日影又逐而炤之 因而有孕 生一卵 大如五升許 王棄之與犬豕

皆不食 又棄之路中 牛馬避之 後棄之野 鳥覆翼之 王欲剖之 不能破 遂還其母 其母以物裹之 置於暖處

有一男兒 破殼而出 骨表英奇 年甫七歲 嶷然異常 自作弓矢射之 百發百中 扶餘俗語 善射爲朱蒙 故以名云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 / 王知慕漱妃

이내 별궁에 두었다 / 仍以別宮置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 / 懷日生朱蒙

이해가 계해년이었다 / 是歲歲在癸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 骨表諒最奇

우는 소리가 또한 심히 컸다 / 啼聲亦甚偉

처음에 되만한 알을 낳으니 / 初生卵如升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 觀者皆驚悸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 王以爲不祥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고 / 此豈人之類

마구간 속에 두었더니 / 置之馬牧中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고 / 群馬皆不履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 棄之深山中

온갖 짐승이 모두 옹위하였다 / 百獸皆擁衛

 

왕이 천제 아들의 비()인 것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안에 해가 비치자 이어 임신하여 신작(神雀)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朱蒙)을 낳았는데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처음 낳을 때에 좌편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五升]들이 만하였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더니, 알이 마침내 갈라져서 한 사내 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언어가 모두 정확하였다.

 

어미가 우선 받아서 기르니 / 母姑擧而養

한 달이 되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 經月言語始

스스로 말하되 파리가 눈을 빨아서 / 自言蠅噆目

누워도 편안히 잘 수 없다 하였다 / 臥不能安睡

어머니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 母爲作弓矢

그 활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 其弓不虛掎

 

어머니에게,“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오하였다. 그 어머니가 댓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의 파리를 쏘는데 화살을 쏘는 족족 맞혔다. 부여(扶餘)에서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들 한다.

 

王知慕漱妃仍以別宮置懷日生朱蒙是歲歲在癸骨表諒最奇啼聲亦甚偉初生卵如升觀者皆驚悸王以爲不祥此豈人之類置之馬牧中群馬皆不履棄之深山中百獸皆擁衛王知天帝子妃以別宮置之其女懷中日曜因以有娠神雀四年癸亥歲夏四月生朱蒙啼聲甚偉骨表英奇初生左腋生一卵大如五升許王怪之曰人生鳥卵可爲不祥使人置之馬牧群馬不踐棄於深山百獸皆護雲陰之日卵上恒有日光王取卵送母養之卵終乃開得一男生未經月言語竝實母姑擧而養經月言語始自言蠅噆目臥不能安睡母爲作弓矢其弓不虛掎謂母曰群蠅噆目不能睡母爲我作弓矢其母以蓽作弓矢與之自射紡車上蠅發矢卽中扶余謂善射曰朱蒙

단군고기(檀君古記)

왕이 천제(天帝)의 아들의 비()임을 알고 별실(別室)에 거처하게 하였는데, 그 여인이 창 가운데로 들어오는 햇볕을 품어서 아들을 배어, ()나라 신작(神爵) 4년 계해 4월에 주몽(朱蒙)을 낳으니,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표(骨表)가 영기(英奇)하였다. 처음에 왼쪽 겨드랑이로부터 큰 알을 낳았는데, 5[]들이만 하니, 왕이 괴상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말먹이는 데[馬牧]에 갖다 버리게 하였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아니하고, 깊은 산에 버리니, 백수(百獸)가 모두 보호하며, 구름이 낀 날에도 알 위에는 늘 일광(日光)이 있으므로, 왕이 알을 도로 갖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다. 한 달 만에 그 알이 열리며 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난 지 한 달도 지나지 못하여 말을 능히 하며, 어머니에게 이르기를, “파리들이 눈을 건드리어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므로, 그 어머니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었더니, 스스로 물레[紡車] 위에 앉은 파리를 쏘아 번번이 맞히매, 민간에서 이르기를, “활 잘 쏘는 이는 주몽이다.” 하였다.

 

王知天帝子妃, 以別室置之, 其女懷牖中日曜, 因而有娠漢神崔四年癸丑夏四月, 生朱蒙, 啼聲甚偉, 骨表英奇初從左腋生一大卵, 容五升許, 王怪之曰: “人生鳥卵, 可爲不祥使置之馬牧, 群馬不踐棄於深山, 百獸皆護雲陰之日, 卵上恒有日光, 王取卵送母養之, 月終乃開, 得一男, 生未經月, 言語竝實謂母曰: “群蠅噆目, 不能睡, 母爲我作弓矢其母以葦作弓矢與之, 自射紡車上蠅, 發矢則中, 俗謂善射曰朱蒙

위서

고구려전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로서 부여왕(夫餘王)에게 [잡혀] 방에 갇혀 있던 중, 햇빛이 비치는 것을 몸을 돌려 피하였으나 햇빛이 다시 따라와 비추었다. 얼마 후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 만하였다. 부여왕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에다 버렸으나 소나 말들이 피해 다녔다. 뒤에 들판에 버려 두었더니 뭇새가 깃털로 그 알을 감쌌다. 부여왕은 그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게 되자, 결국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어머니가 다른 물건으로 이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그가 성장하여 자()를 주몽(朱蒙)이라고 하니, 그 나라 속언(俗言)주몽이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朱蒙母河伯女為夫餘王閉於室中為日所照引身避之日影又逐既而有孕生一卵大如五升夫餘王棄之與犬犬不食棄之與豕豕又不食棄之於路牛馬避之後棄之野眾鳥以毛茹之夫餘王割剖之不能破遂還其母其母以物裹之置於暖處有一男破殼而出及其長也字之曰朱蒙其俗言朱蒙善射也

북사

고구려전

[부여(夫餘)]()이 일찍이 하백(河伯)의 딸을 붙잡아 방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을 받게 되어 몸을 돌려 피했으나 햇빛이 다시 따라와 비추어 주었다. 얼마 후에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들이 만하였다. 부여왕(夫餘王)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가에 버려 두었으나 소와 말들이 피해 다녔다. 들판에 버려두었더니 뭇새들이 깃털로 그 알을 덮어 주었다. 은 그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게 되자, 결국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놓아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그가 성장하여 자()를 주몽(朱蒙)이라고 하니, 그 나라의 속언(俗言)주몽(朱蒙)’이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高句麗其先出夫餘王嘗得河伯女因閉於室內為日所照引身避之日影又逐既而有孕生一卵大如五升夫餘王棄之與犬犬不食與豕豕不食棄於路牛馬避之棄於野眾鳥以毛茹之王剖之不能破遂還其母母以物裹置暖處有一男破而出及長字之曰朱蒙其俗言朱蒙善射也

 

 

내용 3주몽의 탄생과 어린시절의 비교 분석.

 

삼국사기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 위서,

북사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삼국사기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의 비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 / 王知慕漱妃

이내 별궁에 두었다 / 仍以別宮置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 / 懷日生朱蒙

이해가 계해년이었다 / 是歲歲在癸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 骨表諒最奇

우는 소리가 또한 심히 컸다 / 啼聲亦甚偉

처음에 되만한 알을 낳으니 / 初生卵如升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 觀者皆驚悸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 王以爲不祥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고 / 此豈人之類

마구간 속에 두었더니 / 置之馬牧中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고 / 群馬皆不履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 棄之深山中

온갖 짐승이 모두 옹위하였다 / 百獸皆擁衛

금와는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에 비취어 [유화는] 몸을 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좇아와 비쳤다. 그래서 임신을 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금와]은 알을 버려 개,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후에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은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왕이 천제 아들의 비()인 것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안에 해가 비치자 이어 임신하여 신작(神雀)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朱蒙)을 낳았는데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처음 낳을 때에 좌편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五升]들이 만하였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더니, 알이 마침내 갈라져서 한 사내 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언어가 모두 정확하였다.

 

어미가 우선 받아서 기르니 / 母姑擧而養

한 달이 되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 經月言語始

스스로 말하되 파리가 눈을 빨아서 / 自言蠅噆目

누워도 편안히 잘 수 없다 하였다 / 臥不能安睡

어머니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 母爲作弓矢

그 활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 其弓不虛掎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어머니에게,“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오하였다. 그 어머니가 댓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의 파리를 쏘는데 화살을 쏘는 족족 맞혔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부여(扶餘)에서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들 한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산문으로 된 3개 문구 중에서 첫째 부분은 삼국사기와 구삼국사가 무언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둘째 부분은 삼국사기가 구삼국사를 편집해서 쓴 것이며, 셋째 부분은 구삼국사를 달리 표현했을뿐 사실상 그대로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삼국사기와 위서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위서 고구려전

금와는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에 비취어 [유화는] 몸을 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좇아와 비쳤다. 그래서 임신을 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금와]은 알을 버려 개,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후에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은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로서 부여왕(夫餘王)에게 [잡혀] 방에 갇혀 있던 중, 햇빛이 비치는 것을 몸을 돌려 피하였으나 햇빛이 다시 따라와 비추었다. 얼마 후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 만하였다. 부여왕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에다 버렸으나 소나 말들이 피해 다녔다. 뒤에 들판에 버려 두었더니 뭇새가 깃털로 그 알을 감쌌다. 부여왕은 그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게 되자, 결국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어머니가 다른 물건으로 이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해당하는 이야기가 없음)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그가 성장하여 자()를 주몽(朱蒙)이라고 하니, 그 나라 속언(俗言)주몽이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이 부분의 삼국사기는 기본적으로 위서를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서와 다른 내용인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는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에 서 인용한 것이고(위에 있음),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 백중이었다.는 또다른 고기(古記)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에서 일부 편집하여 쓴 것이 다.

 

2)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는 것은 구삼국사와 위서를 보다시피 구삼국사를 토대로 위서를 약간 가미하여 쓴 것이임을 알 수 있다.

 

3) 삼국사기와 구삼국사, 위서의 주요 내용를 한꺼번에 비교해 보자.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위서 고구려전

주몽(朱蒙)을 낳았는데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그래서 임신을 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처음 낳을 때에 좌편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五升]들이 만하였다.

얼마 후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 만하였다.

[금와]은 알을 버려 개,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후에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은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부여왕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에다 버렸으나 소나 말들이 피해 다녔다. 뒤에 들판에 버려 두었더니 뭇새가 깃털로 그 알을 감쌌다. 부여왕은 그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더니, 알이 마침내 갈라져서 한 사내 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언어가 모두 정확하였다.

결국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어머니가 다른 물건으로 이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위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번째 칸, 세 번째 칸, 네 번째 칸 모두 이 부분의 삼국사기는 기본적으로 위서를 인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 칸에 있는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는 첫째 칸에 있는 구삼국사를 편집한 것이다.

4) 그런데 이 부분의 위서 고구려전은 기본적으로 사기 주본기에 나오는 주나라의 시조

후직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주본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달을 다 채워서 아들을 낳았는데 불길하게 생각되어 비좁은 골목에 버렸으나 말이나 소가 지나가면서 모두 피하고 밟지 않았다. 다시 아이를 수풀 속에 옮겨놓으니, 마침 산속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또다시 장소를 옮겨서 도랑의 얼음 위에 버렸으나 날짐승들이 날개로 아이를 덮고 깃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강원은 신기하게 여겨 아이를 데려다가 잘 키웠다.

居期而生子以為不祥弃之隘巷馬牛過者皆辟不踐徙置之林中適會山林多人遷之而弃渠中冰上飛鳥以其翼覆薦之姜原以為神遂收養長之

 

 

 

4) 그리고 사기 주본기, 위서 고구려전,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주요 골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사기 주본기

위서 고구려전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

1) 아들을 골목에 버렸다

 

2) 말이나 소가 지나가면서

모두 피하고 밟지 않았다.

 

3) 새가 날개로 아이를 덮고 깃을 깔아주었다.

1) 길에다 버렸다.

 

2) 소나 말들이 피해 다녔다.

 

3) 새가 깃털로 그 알을 감쌌다.

1) 들판에 버렸다.

 

2) 소나 말이 피하였다.

 

 

3)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위에서 보듯이 위서 고구려전은 사기 주본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다시말해 주몽의 이야기를 중국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구삼국사를 버리고 위서 고구려전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우리의 역사를 전하는데 우리의 역사는 버리고 중국 역사를 채택한 것이다.

그것은 중국 역사이지 우리 역사가 아니다.

삼국사기는 우리 역사를 전하는데 중국 역사를 전하는 잘못을 저질렀다.(사대주의)

, 우리 민족의 사료와 중국측의 사료가 함께 있을 때

우리 민족의 사료를 버리고 중국측의 사료를 채택한 것이다.

(자기 것은 버리고 남의 것을 취하였음)

바로 이것을 사대주의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부식이 욕을 먹는 것이다.

이러한 삼국사기 동명왕 본기의 태도는 삼국사기 전체에 퍼져있다.

이것이 삼국사기의 단점이며 우리 역사가 잘못 전해진 원인이 된다.

 

3.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과 단군고기의 비교.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檀君古記)

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 / 王知慕漱妃

이내 별궁에 두었다 / 仍以別宮置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 / 懷日生朱蒙

이해가 계해년이었다 / 是歲歲在癸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 骨表諒最奇

우는 소리가 또한 심히 컸다 / 啼聲亦甚偉

처음에 되만한 알을 낳으니 / 初生卵如升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 觀者皆驚悸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 王以爲不祥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고 / 此豈人之類

마구간 속에 두었더니 / 置之馬牧中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고 / 群馬皆不履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 棄之深山中

온갖 짐승이 모두 옹위하였다 / 百獸皆擁衛

 

왕이 천제 아들의 비()인 것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안에 해가 비치자 이어 임신하여 신작(神雀)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朱蒙)을 낳았는데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처음 낳을 때에 좌편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五升]들이 만하였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더니, 알이 마침내 갈라져서 한 사내 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언어가 모두 정확하였다.

왕이 천제(天帝)의 아들의 비()임을 알고 별실(別室)에 거처하게 하였는데, 그 여인이 창 가운데로 들어오는 햇볕을 품어서 아들을 배어, ()나라 신작(神爵) 4년 계해 4월에 주몽(朱蒙)을 낳으니,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표(骨表)가 영기(英奇)하였다. 처음에 왼쪽 겨드랑이로부터 큰 알을 낳았는데, 5[]들이만 하니, 왕이 괴상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말먹이는 데[馬牧]에 갖다 버리게 하였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아니하고, 깊은 산에 버리니, 백수(百獸)가 모두 보호하며, 구름이 낀 날에도 알 위에는 늘 일광(日光)이 있으므로, 왕이 알을 도로 갖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다. 한 달 만에 그 알이 열리며 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난 지 한 달도 지나지 못하여 말을 능히 하며,

어미가 우선 받아서 기르니 / 母姑擧而養

한 달이 되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 經月言語始

스스로 말하되 파리가 눈을 빨아서 / 自言蠅噆目

누워도 편안히 잘 수 없다 하였다 / 臥不能安睡

어머니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 母爲作弓矢

그 활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 其弓不虛掎

 

어머니에게,“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오하였다. 그 어머니가 댓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의 파리를 쏘는데 화살을 쏘는 족족 맞혔다. 부여(扶餘)에서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들 한다.

어머니에게 이르기를, “파리들이 눈을 건드리어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므로, 그 어머니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었더니, 스스로 물레[紡車] 위에 앉은 파리를 쏘아 번번이 맞히매, 민간에서 이르기를, “활 잘 쏘는 이는 주몽이다.” 하였다.

 

 

1) 위에서 보다시피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는 똑같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동명왕편에는 시가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동명왕편에서 시를 제거하면 단군고기와 완전히 같다.

이러한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만약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을 읽을 때 시가 섞여있어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

단군고기를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면 단군고기를 읽어보면 된다는 것이고

더욱 확실하게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알려면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과

단군고기를 함께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임)

 

 

2) 이것은 동명성왕의 기록이 구삼국사(舊三國史)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아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 따라서 삼국사기와 단군고기,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위서, 단군고기와 위서의 비교를 생략한다.

또한, 위서와 북사의 비교도 생략한다.

북사는 위서 등을 바탕으로 쓴 것이니 위서가 북사의 원전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삼국사기의 원전 규명에 있어서 위서가 북사를 대표하고 있으니

위서를 북사 대신써도 큰 무리는 없다. 따라서 북사의 내용 분석도 제외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이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에 나오는

신작(神雀)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朱蒙)을 낳았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을 근거로 김부식이 고구려의 건국을 ()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역사를 줄인 것은 김부식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고구려 역사의 축소는 구삼국사를 지은 사람이 자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삼국사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기록을 근거로 쓴 것으로 추정되므로

고구려 역사의 축소는 신라에서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