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史上(고사상) 이두문 명사 해석법
: 옛 사서상에 나오는 이두문 명사 해석법
3. 결론
이상의 서술한 바는 곧 졸견으로 얻은 바 옛 역사상(古史上- 고사상)의 이두문으로 쓴
명사의 해석법이다.
이 따위 해석에서 얻는 사학적 연구상의 효과를 간략하게 펼처 보이리라(略陣-약진하리라).
1) 앞 사람(前人-전인)이 이미 증명한 것(者-자)을 더욱 확실(堅確-견확)하게 함이니
마치 함창(咸昌)이 고령가야(古寧加耶)임은 앞 사람(前人-전인)의 설(說)도 있지만,
이제 야(耶), 라(羅)가 같은 음(同音-동음)인 줄을 발견하여
고령가야를 고링가라로 읽(讀-독)는 동시에
함창(咸昌) 공갈못의 공갈이 곧 고링가라의 줄인 음(축음)임을 알지며,
따라서 고링가라의 위치가 더욱 명백할지니라.
2) 유래의 의문을 명확하게 답(明答-명답)할 수 있으니,
마치 고려사 지리지에 익산의 무강(武康)왕릉을 기준(箕準)의 능으로 기재(載-재)하고,
“사람들은 말통대왕 능이라고 부른다(俗號末通大王陵)”이라 주(註)를 달고
“또 이르기를 백제 무왕의 아이 때 이름은 서동이다(一云百濟武王小名薯童)”이라고
두번째 주(再註)를 달아
두 설을 같이 실었으나(양설을 병존하였으나),
삼국유사에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딸(女) 선화를 꾀어 장가들은(유취-誘娶한) 사실을 기록(記-기)하였으며,
동국 여지승람에는 무강왕이 선화부인과 미륵산성을 지을새(作-작 할새)
진평왕이 수많은 공인(百工-백공)을 보내 도왔다 하니(助-조 하였다 하니)
서(薯)의 뜻은“마”니 서동(薯童)은 곧“마동(童)”이요, 말통(末通)은 곧 '마동'의 음을 취한 것 인즉(취음인즉),
무강왕은 곧 백제 본기의 무왕(武王)인 장(璋)이라.
장(璋)의 시호(諡-시)가 무강(武康)왕 이어늘
잔결한(殘缺: 부스러져 빠진 게 많은) 백제사에서 강(康)이 빠졌으며(궐하며: 원래는 무강왕인데 강을 빼고 무왕이라고 했다는 말),
장(璋)의 왕후가 선화요,
미륵산성은 장(璋)과 선화의 연애를 노래하던 옛 터(유지-遺址)이거늘
사가(史家)의 참고가 정밀하지 못하여(부정-不精하여)
8백세의 연령이나 차이가 있는 격세(隔世- 세월의 사이가 뜬)의 왕인
기준(箕準)의 궁인(宮人)으로 인식하여(認-인하여)
유냉재(柳冷齋)같은 박식한 학자(박학자)로도 그 익산의 회고시(懷古詩)에
“가엽구나 정신없이 배타고 떠나면서(可惜蒼黃浮海日)”, “뱃머리에 선화부인은 태웠구나(船頭猶載善花嬪)”라고 하는
웃음거리(笑話-소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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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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